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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홍길용] 이제는 자본민주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대제국을 유지했던 로마가 본격적으로 힘을 키운 것은 제정(帝政)이 아닌 공화정 체제 때다. 원로원이 공화정의 핵심이었지만, 결국 국가 요직에 오르려면 최종적으로 민회의 표결을 거쳐야 했다. 민회에서 평민 가운데 선출하는 호민관은 원로원 의원이 돼 국정에도 적극 참여했다. 공화정 로마의 최고경영자(CEO) 격인 집정관 가운데는 호민관 출신들도 적지 않다. 귀족 중심의 사회지만 소액주주인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국가경영에 참여한 결과다.

인류 역사상 가장 광활한 제국을 건설한 몽골제국은 창업자 칭기스칸을 비롯해,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쿠빌라이 칸 때까지 국가지도자를 쿠릴타이(Khuriltai)라는 귀족회의에서 선출했다. 세운 공이 많든, 아니면 정치력이 뛰어나든 각 씨족을 대표하는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야 칸이 될 수 있었다. 쿠릴타이가 제대로 작동한 때만큼은 소통과 배려, 견제와 감시로 권력의 투명성이 유지됐다. 로마의 원로원 격인 이 같은 귀족회의는 몽골 외 흉노, 선비, 거란, 여진 등 다른 중국 북방 민족들에게도 공통적이다. 인구와 물자에서 한족(漢族)에 열세였던 이들이 오랜 기간 중국을 위협했던 원동력도 최고지도자를 능력에 따라 선출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른 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재벌의 세습경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벌 총수가 소수 지분으로 마치 기업 전체를 소유한 듯 행동하는 데 따른 지적이다. 그런데 이 같은 재벌의 폐해는 경영참여권을 방치한 주주들, 다수 국민들에도 책임이 전혀 없지는 않다.

소액주주들이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에 나섰다면 소수 지분을 가진 대주주들이 마치 기업 전체를 소유한 듯 행동하기는 어려웠을 지 모른다. 소액주주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 반문하겠지만, 현행 상법상 소액주주라도 조금만 힘을 합치면 경영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SNS 등 통신의 발달로 같은 뜻을 가진 주주들을 모으기도 쉬워졌다. 많은 기업들이 매년 수 차례 외국인이나 기관투자자들과 별도로 경영을 설명하는 이유도 이들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재벌들은 후계구도를 위해서도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정성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주총 참여를 위해 현장에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이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행사에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셰도우 보팅(shadow voting)이 폐지되면서 전자투표 등의 도입이 확산될 전망이다. 의결권 행사를 위한 거리적 물리적 한계가 점차 사라지는 셈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셰도우 보팅 폐지로 소액주주의 감사 선임 영향력이 높아져 경영에 장애요인이 될 것이라 우려도 많다. 하지만 현 대주주만 옳고, 다른 주주 특히 소액주주는 마치 잠재적 해사(害社) 세력인양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소액주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소통을 더 강화해야 한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 독점자본주의의 폐해를 막을 최선책은 주주자본주의, 바로 자본민주화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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