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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밥 먹듯, 나눔과 봉사는 일상이자 습관”
‘을지로 ???’으로 남몰래 기부하다 이젠 열 일 제치고 ‘기부 전도사’로 동분서주…최신원 SKC 회장의 행복한 나눔철학
‘을지로 최신원’. 2003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도착한 하얀 편지봉투에는 그렇게 까만 여섯글자만 또박또박 적혀있었다. 봉투 안에는 거액의 기부금이 담겼다. 이때 시작된 편지봉투는 그 후로도 약 5년간 이어졌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수소문 끝에 찾아낸 편지봉투의 주인공은 SK그룹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선대 회장의 차남인 최신원 SKC 회장.

최 회장이 현재까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포함한 자선단체에 기부한 사재는 24억원에 달한다. 현직 기업인 중 개인 기부금액으로는 최대 규모다. 


▶ ‘을지로 최신원’에서 고액기부 전도사로= 지난 10일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최신원 회장을 만났다. 최 회장은 2000년말까지만 해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남몰래 기부를 했다. “소문내 봐야 뭐하나. 조용히 좋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라는게 당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자신의 나눔과 기부를 더이상 숨기지 않는다. 최 회장은 “누가 기부한다는게 자꾸 소문이 나야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나눌수 있게 된다. 더 많이 알려서 ‘기부 문화’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2008년 11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대기업 회장 중에는 처음으로 정식 가입했다. 2012년에는 아너소사이어티 대표로 선출돼 본격적으로 ‘고액 기부’ 전도사로 나섰다.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세계공동모금회가 발족한 세계리더십위원회 위원 등도 맡아 기부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탈북청소년 복지성금으로 매달 500만원씩 기부하고, 지난 여름에는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아이스버킷챌린지’에도 동참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나눔 DNA’= 그의 나눔활동은 아버지 최종건 선대회장과 조부인 최학배 옹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최 회장은 아버지에 대해 “손에 잡히는 대로 나눠주셨던 분”이라고 떠올렸다.

최종건 선대 회장은 공장을 지어서 동네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이익이 나면 제일 먼저 직원들의 ‘보너스’를 챙겨줬다. 농사를 크게 지으면서 동네사람들에게 인색하지 않았던 할아버지, 이웃과 누룽지를 나눴던 할머니가 모두 그의 ‘나눔’ 스승들이다. 집무실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큰 사진을 걸어놓은 최 회장은 “가르침에 100만분의 1도 보답할 길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최 회장은 2004년 ‘재단법인 선경 최종건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유독 마음을 쓰셨던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고자 2007년 원유 유출사고가 발생한 태안지역 고등학생 50명에게도 매년 장학금을 지원하고있다.

최 회장은 부모로부터 배웠던 것들을 이제 슬하의 2녀1남에게 전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기부와 봉사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봉사활동에 자녀들을 데려간다. 그리고 ’조금씩이라도 기부하라‘고 일러준다. 집무실과 집 근처 노점상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그 노점상에 매년 김치를 보내는 그의 습관을 자녀들은 보고 배울터다. 최 회장은 지난 9월 둘째딸 결혼식에서 받은 축의금도 전액 경기사회복지모금회와 기아 대책에 기부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흘려보내야 한다”는 게 그의 교육관이다.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여야한다는 것이다.

▶회사 곳곳에 비치된 모금함= 최 회장의 기부활동은 기업 경영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는 “조직내에서는 구성원과 성장및 비전을 나누고, 조직외적으로는 고객들과 가치를 나누는 것이 경영철학”이라며 “기업은 더욱 큰 성취를 이루기 위해 활발한 사회활동에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만 잘 제공한다고 해서 발전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소비자들은 제품과 서비스는 기본이고, 사회적책임까지 다하는 기업들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또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이끄는 SKC 공장 곳곳에 비치돼있는 모금함은 이런 경영철학을 보여주는 사례다. 과자나 치약을 사고 받은 거스름돈이 모금함을 통해 이웃들에게 전달된다. 이런 작은 습관들은 회사 직원들 사이에 서서히 전파되고 있다. SK텔레시스가 한때 경영난으로 직원 임금을 동결했을 때 급여 우수리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임직원 90%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SKC 직원들은 요즘 매달 독거노인을 위한 사랑의 도시락배달, 반찬배달 봉사활동을 한다. 최 회장은 “직원들이 봉사활동에 다녀와서 ‘힐링’을 하고 왔다고 자랑을 한다”며 “그런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하다”고 말했다.

봉사와 나눔을 직원들이 공유하는 회사는 건전한 노사문화를 덤으로 얻게 됐다. 회장와 노조위원장이 함께 김장을 담그고 연탄을 나른 후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다 보니 10년 가까이 노사간 무분규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SK그룹의 경영관리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와도 맞닿아있다고 최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SK의 핵심 경영철학은 이해관계자들의 행복추구에 있다. 기업을 둘러싼 이들까지 행복해야 기업이 오랜기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SK그룹이 전방위로 벌이는 사회적기업 육성 사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업은 대기업이 긴 안목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벌여온 사회공헌 활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 “기업인 개인도 나눔 동참해야”= 최 회장은 나눔과 공생을 위해 “기업과 기업가 개인의 역할이 따로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회사 차원에서 수십억원, 많게는 수백억원을 기부한다. 최 회장은 회사와 별개로 기업인들이 개인 차원에서 평소에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불미스러운 일을 덮기위해 덜컥 거액을 내놓는 일은 평소 부유층의 기부행위에 오히려 먹칠을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또 ”기부를 많이할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며 “고개를 뻣뻣이 들고하는 기부는 비웃음만 살 뿐“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나눔은 서로 배우고 전파되는 것”이라며 “기업 임원들도 개인적으로 조금씩 기부를 늘려주면,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10배 이상 기부문화가 확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공동모금회(UWW) 리더십위원회 회의에도 주목해달라고 당부했다. 기금 모금과 배분을 통해 각 지역사회 사회복지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중추기관이다. 2010년 기준으로 총 모금 수입은 약 51억 달러(한화 6조원)에 달한다. 이번 UWW리더십 회의에는 31개국 약 70여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최 회장은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 때일수록 주변을 더 돌아보고 돌봐야 한다”며 “내 이웃과 나누는 행동만으로도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뻔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는 “밥을 먹는 일만큼 나눔은 뻔하고 일상적인 일이 아닌가”라고 오히려 되물었다. 


대담=박승윤 산업부장
정리=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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