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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피 내리는 스님’, ‘글 잘 쓰는 스님’, 원철 스님이 이야기로 깨우치는 삶의 지혜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산에 살다보면 세포가 섬세해지지요. 맛과 냄새에 예민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커피의 향과 맛도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가끔 절을 찾은 손님들이 ‘스님, 커피 있습니까’라고 청을 해오시길래 접대차 준비해오던 것이 이제는 일상화됐지요. 지금은 차와 커피를 다 대접합니다. 요새는 커피가 대세이니 트렌드도 따르고, 또 우리 차문화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도주의이지요.”

원철 스님(54)은 서울 한복판 조계종단에서 불교계 일꾼으로 7년간 일하다가 지난 2011년 홀연 산사로 내려갔다. 충북 보은 법주사에서 1년을 있다가 지금까지 해인사에 있다. 수행에 전념하는 한편, 스님들의 교육 기관인 해인사승가대학에서 학장을 맡고 있다. 산사로 돌아간 후 첫 산문집이 최근 출간된 ‘집으로 가는 길을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불광출판사)다. 커피 내리는 일은, 우스개 삼아 ‘수도승’ (수도권에서 있는 승려)이라던 서울살이 시절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가 차와 커피를글감삼아 ‘중도주의’라고 에둘러 표현한 사유는 이번 산문집을 관통하는 주제다. 도시와 산속, 떠남과 머무름, 감춤과 드러냄, 채움과 비움, 개화와 낙화 등 ‘양변’의 생각이 글마다 녹아 있다. ‘노마드’(nomad),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유목민같은 수행자를 자처하는 원철 스님의 삶이 또한 그렇다. 종단에서 일하다 어느날 문득 산으로 돌아갔듯, 몸도 생각도 구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과 수행을 지향한다. 


24일 서울 조계사 인근에서 기자들을 만난 원철 스님은 “자기가 있는 곳,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기의 관점에만 집착하지 않는 삶”을 말했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삶”에 대한 지향과 조언을 전했다.

원철 스님은 해인사로 출가해 은해서 실상사 법주사 동국대 등에서 불교경전과 선어록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특히 일간지와 종교전문지 등 다양한 매체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춘 글을 쓰며 ‘문장가’로 꼽혀 왔다. 이번에 낸 산문집에선 스님의 일상과 수행, 공부, 여행 중 얻은 단상과 깨달음을 담았다. 강한 주장은 없지만,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여운이 긴 글들이다. 총 4장 가운데 1장의 제목을 ‘삶에서 중요한 건 스토리와 내용이다’라고 붙일 정도로 글마다 재미있는 ‘이야기’ 몇 토막씩 담겼다. 화두를 잡고, 이야기를 캐내고, 그 속에서 깨달음의 지혜를 얻어내는 것이 곧 원철 스님이 글을 쓰는 과정이기도 했다. 수도자의 삶이 은둔의 삶이라면 감춤이지만, 대중에게 글과 깨우침을 전하는 일은 ‘드러냄’이다. 스님에게 경전을 읽는 것은 일이지만, 잡지를 읽는 것은 휴식이 되듯, 글쓰기 또한 원철스님에겐 일종의 ‘휴식’이자 ‘숨쉴 구멍’이었다.

원철 스님은 책에서 “산다는 것은 결국 드러냄과 감춤의 반복이다. 출근이 드러냄이라면 퇴근은 감춤이다. 화장이 노출을 위한 것이라면 민낯은 은둔을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또 “노출로 인한 피로와 허물은 은둔을 통해 치유하고, 은둔의 충전은 다시 노출을 통해 확대재생산하는 선순환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원철 스님은 이번 책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조선스키’ ‘짚신스키’ ‘이노무스키’ 등 차창 밖으로 보이는 스키대여점 간판을 보면서 상념에 빠지거나 ‘공부의 신’이 3개 국어에 능통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거나, 덥석 이불 빨래를 했다가내리는 비에 후회하기도 한다. 겨울 찬바람을 막겠다고 외풍과 씨름하고, 서고 정리를 하다가 하루 종일 독서 삼매경에 빠지고, 도로에서 차가 막히자 내친 김에 근처 유명한 호두나무를 보고 가자고 운전대를 꺾는다. 어떻게 보면 그냥 사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글로 길어올리니 희로애락이 잔잔하게 깃든 흥미로운 이야기가 됐고, 삶의 지혜를 담은 에세이가 됐다.

원철 스님은 “집이란 우리가 돌아가야 하는 원래의 자리이며, 본향(本鄕,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이른다”며 “깨달음은 어디에서 출발해도 멀지 않다는 뜻을 제목에 담았다”고 말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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