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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 “아버지 당부로 발 들인 마라톤, 이제는 내 삶의 전부” SK건설 오재환 부장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흡연 경력 20년. 아침에 눈 뜨면 담배부터 먼저 찾았다. 하루 평균 흡연량은 한갑에서 한갑 반 정도. 주기적으로 하는 운동은 없었다. 가끔씩 단체로 하는 축구가 전부였다. 한번 체력을 소진하고 나면 그대로 뻗었다.

오재환(55ㆍ사진) SK건설 부장의 ‘어두웠던 과거’다. 2003년 마라톤에 입문한 이후 지금까지 10년 넘게 달려온 그다. 하지만 건강한 ‘달림이’로서의 삶은 온전히 아버지 덕분에 가능했다.

“2002년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오래 계셨어요. 한 번은 제게 이런 당부를 하셨어요. 담배 끊어라, 꾸준히 하는 운동 만들어라, 부지런히 살아라. 얼마 후 돌아가셨죠. 40살 넘은 아들에게 해주신 이 당부가 가슴에 오래 남더군요.”


담배는 바로 끊었다. 문제는 운동이었다. 사내 마라톤 동호회에 무턱대고 가입했다. 그때가 2003년 초. SK건설에 있다가 GS건설로 이직했을 때였다. 그해 봄에 나간 처음으로 마라톤 하프(Half) 대회에 나갔다. 몸이 부서지도록 뛰었더니 기록이 나쁘지 않았다.

그는 “그러고 나니 기록을 더 줄이고 싶다는 욕심, 골인 때 느낀 희열, 아버지의 당부를 지켰다는 뿌듯함이 뒤섞이면서 마라톤이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같은해 11월에는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했고 완주했다. 점점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갔다.

우연한 기회에 2005년 SK건설로 돌아왔다. 예전에 근무할 땐 없었던 사내 마라톤 동호회가 있었다. 가입했더니, 등록 회원은 30~40명 뿐.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오 부장은 스스로 훈련대장을 자임하고 나섰다.

목요일마다 함께 모여서 달렸다. 이 훈련을 ‘목달’이라고 불렀다. 당시 부서 사무실이 있던 관훈동에서 남산 산책로까지 뛰어서 이동했다. 또 동호회 회원들과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열리는 ‘혹서기 마라톤’에도 도전했다. 그는 “열정적인 회원 10~12명 정도가 늘 함께했다”며 “이후로 매년 혹서기 마라톤에 참가하고 있고, 동호회 운영도 활기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뿌듯하게 말했다.

자칭 훈련대장의 ‘특훈’ 덕분에 중흥기를 맞이한 동호회는 2006년 ‘행복나누기 자선레이스’를 시작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기부문화가 퍼지기 시작할 때였다. 5000원에서 10만원씩 돕겠다고 약속한 직원들의 명단을 등에 붙이고 풀코스를 완주하면 약정한 금액을 실제로 기부하는 식이었다.

오재환 부장은 매년 2회씩 진행되는 자선레이스에 지금까지 빠짐없이 참가해오고 있다. 그는 “한 번은 성금으로 선물을 잔뜩 사서 한 장애인 시설을 방문했는데, 우리의 레이스로 모인 돈이 이렇게 따뜻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무척 좋았다”고 회상했다.

오 부장도 정년이 다가온다. 직장생활이 하나의 레이스라면, 거의 골인지점에 다다른 셈이다. 그는 “은퇴하면 색소폰을 배워볼 계획”이라고 말하면서도 “무릎이 도와주는 한 70살 넘어서도 계속 달리기는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whywh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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