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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독 간호사가 부르던 그리운 이름, 어머니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베틀로 짠 명주를 길게 늘여뜨린 듯 휘장이 덮여 있다. 어렴풋이 흰 소복에 쪽진 여인이 보인다. ‘어머니’의 가장 한국적인 원형이다. 다듬이 방망이 같은 것을 짊어 진 여인의 등 굽은 뒷모습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휘장 밖으론 고무신 한 벌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재독작가 송현숙(63)이 2008년 이후 6년만에 고국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1972년 파독 보조 간호사였던 송현숙은 20대 후반 늦은 나이에 함부르크 미술대학에 진학하며 미술가의 길로 접어든 작가다. 전라남도 담양 출신의 작가는 독일 생활이 4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도 특유의 느릿한 억양으로 말한다. 
7획 뒤에 인물, 캔버스 위 템페라, 150x170㎝, 2013 [사진제공=학고재]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골에서 매일 1시간씩 고개 넘어 학교를 다녔어요. 명절이 오면 마을 사람들 전체가 삼베ㆍ명주에 물감 들여 새 옷 해 입고 잔치상 채리고…. 어릴 때 추억이 잊혀지지 않아요.”

송현숙의 그림은 단 몇번의 붓놀림으로 완성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귀얄(돼지털이나 말총을 넓적하게 묶어 만든 붓, 주로 풀칠할 때 쓰임)’을 이용해 붓의 앞ㆍ뒤ㆍ양옆에 서로 다른 색과 농도의 물감(템페라)을 묻힌 후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단 숨에 획을 그려내는 방식이다. 각 그림의 제목에도 획순을 붙였다. ‘7획 뒤에 인물’은 인물을 먼저 그린 후 그 위를 7번의 붓질로 덮은 그림이다. 고요하고 정갈한 정신 활동이 서예가의 그것과도 닮았다.

한 호흡, 한 획, 절제된 붓 끝에서 고향,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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