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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과 개인의 자유 다룬 연극 잇달아 개막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따뜻한 가족애나 연애담을 소재로 한 연극들이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권력과 개인의 자유를 다룬 연극들이 잇달아 개막해 눈길을 끈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거나 자각없이 순응하며 살고있는 연극 속 주인공들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이 연극의 제목은 시인 김수영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첫 소절에서 따왔다. 배우 강신일과 연출가 김재엽이 시인 김수영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극이 전개된다.

김수영은 명동에서 박인환 등 문인들과 어울리던 시절부터 6ㆍ25전쟁 때 의용군으로 끌려가 간신히 살아온 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히고, 4ㆍ19혁명, 5ㆍ16군사정변을 겪기까지 치열하게 시를 썼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그리고 일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권력에 기생해온 자들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사진제공=서울문화재단, 극단 노을, 코르코르디움]

6ㆍ25전쟁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전으로 달아나놓고 서울시민들에게 “안심하고 서울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했던 일화와 텔레그램을 감청하지 못하는 국정원 요원 등 과거와 현재의 권력을 동시에 꼬집었다.

격동하는 현대사를 겪으면서 “시작(詩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역설했던 김수영 시인의 발자취를 쫓으며 등장인물들은 ‘내 안의 김수영’을 찾아간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비롯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절망 中),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풀 中) 등 김수영의 주옥같은 시들이 배우들의 낭독과 영상 속 자막을 통해 소개된다.

오는 30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다.


▶몰리의 리본=연극 ‘몰리의 리본’은 독재와 사회주의를 비판한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원작으로 한다.

죤스농장에 살던 동물들은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내쫓고 농장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브레인’을 자처하는 돼지 가운데 나폴레옹이 독재를 휘두르려하자 스노우볼은 이에 저항한다. 스노우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쫓겨나게 되고, 나폴레옹에게 복종해 열심히 일하다 병에 걸린 말 복서는 동물병원 대신 도살장으로 실려간다.

인간으로부터 해방됐다는 기쁨도 잠시, 남은 동물들은 지배자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노동착취에 시달린다. 이런 가운데 암말 몰리는 예쁜 리본을 달아주고 달콤한 설탕을 주는 인간 주인을 따라 자발적으로 동물농장을 떠난다.

연극은 인간과 손을 잡은 나폴레옹이 술잔을 높이 든 가운데 화려한 보라색 리본을 달고 등장한 몰리에 조명을 비추며 막을 내린다. 몰리는 “그래서 뭐가 달라졌니?”라는 표정으로 관객들을 바라본다.

70년 전 쓰여진 소설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어디서 많이 본듯한 장면에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극단 노을은 “대중이 살아 깨어있으면서 지도자들을 감시, 비판, 질타할 수 있을 때만 혁명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 등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16일까지 대학로 노을소극장에서 공연한다.


▶히에론, 완전한 세상=“마르크스는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노동이 아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은 삶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고, 권력자들은 이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노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연극입니다”

‘히에론, 완전한 세상’의 작가 마리오 살라자르는 최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양정웅 연출이 이끄는 극단 여행자가 ‘히에론, 완전한 세상’을 11월 8일부터 16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 무대에 올린다.

마리오 살라자르는 1980년생인 젊은 작가로, 어린 시절을 동독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칠레 출신으로 칠레 독재정권을 겪기도 했다.

마리오 살라자르는 “작가라는 직업은 혼자 일을 하기 때문에 가끔 이 사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진다”며 “부업으로 이삿짐센터에서 짐나르기, 바텐더 등 육체적인 노동을 해왔다”고 밝혔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는 이 작품은 2013년 독일 극단 도이체스테아터가 초연했다.

극중 히에론은 완전한 세상을 만든 창조자다. 히에론이 만든 세상에서 사람들은 교육을 받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일만 해야한다. 주어진 생산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처형을 당한다. 사람들은 일년에 한번 크리스마스에만 가족들을 만나 말을 할 수 있다.

똑같은 하루하루를 살며 지겨워하던 주인공 알렉산더는 어느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의문을 갖게 된다. 반면 부인 카트린은 “히에론은 우리가 일과 하나가 되도록 해주셨어. 다시 춥고 배고픈 때로 돌아가고 싶어? 우리의 생산량이 바로 평화야”라고 말한다.

모니터를 통해 인간들을 지켜보던 히에론 역시 지루함을 느껴 부하인 시모니데스와 함께 직접 인간세상에 내려가 구경한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히에론은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마리오 살라자르는 “한국에서도 군사정권 시절 경제 성장을 앞세워 권력을 정당화했다고 들었는데 극중 ‘히에론’도 마찬가지”라며 “‘히에론’에는 권력은 여러 사람이 나눠가져야 한다 등 여러 메시지들이 담겨있다”고 밝혔다.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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