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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를 타고 김훈의 문장이 몸과 산하로 흐른다…육체성과 영원성의 사유로서의 자전거여행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김훈의 문장에선 서로를 부정하는 존재와 개념이 다툼과 화쟁을 거듭하다 풍요로운 한가지로 거듭난다. 그의 사유는 강건하게 변증법에 뿌리박고 있다. 유가식으로 말한다면 그의 글은 서로 들고 나고 섞이며 이(理)와 기(氣)가 작동하는 방식의 표현이다. 그의 생각은 ‘없음’이 ‘있음’의 세계와 한가지인 색즉시공의 불도를 자유로우나 외롭게 유영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그는 몸과 길 사이에서 이루는 자전거의 운동을 이렇게 이른다. 

〔사진=사진작가 이강빈〕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 속에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저녁 무렵의 산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 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땅 위의 일엽편주처럼 외롭고 새롭다. ”

〔사진=사진작가 이강빈〕

자전거야말로 김훈의 사유와 사유의 방법을 드러내는 가장 타당한 매개체이자 상징물이다. 프레임과 구동계, 바퀴가 이루는 ‘구조’가 끊임없이 힘을 순환시키며 스스로를 변태ㆍ변위시킨다. 구조와 흐름이 끊임없이 서로를 부정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로 통합된다. 아래로 눌러야 위로 솟고, 앞으로 밟아야 땅을 뒤로 지치는 바퀴의 원운동이 차제의 직진운동으로의 상호 전환을 거듭한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은 자전거와 국토, 그리고 그 속에서의 이루는 사람살이를 통해 김훈의 사유를 가장 직접적이고 통렬하게 드러내는 저작이다. 그가 2004년 처음 펴냈던 ‘자전거여행’이 10년만에 재출간(전2권 세트, 문학동네)됐다. 

〔사진=사진작가 이강빈〕

이 책에서 그의 자전거는 여수 돌산도 항일암의 봄으로부터 여정을 시작한다. 봄에서 태어남만을, 생명의 기운만을 본다면 그의 문장이 아닐 것이다. 그는 꽃으로써 다양한 죽음의 형태를 본다. 동백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매화는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산슈유는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목련이 질 때는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사진=사진작가 이강빈〕

죽음에 대한 사유는 ‘자전거 여행’에서 유별나다. 가장 찬란하고 떠들썩하게 만개한 생에서 가장 엄연하고 조용한 죽음의순리를 불러낸다. 그 이유는 한강에 이른 자전거에서 짐작할 수 있다. “젊은 날에는 늘 새벽의 상류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류의 저녁 무렵이 궁금하다.자전거는 하류로 간다. 하류의 끝까지 가겠다.”

〔사진=사진작가 이강빈〕

생과 사가 이루는 변증법 혹은 이와 기의 작동, 색즉시공의 원리는 ‘자전거 여행’을 관통하는 사유다. 

〔사진=사진작가 이강빈〕

그는 숲에서 “가장 늙은 숲이 가장 새로운 숲”임을 말한다. 광릉의 소나무에서 그는 밑동의 겉 10분의 1만이 살아있고, 중심을 이루는 안쪽 대부분은 생명의 기능이 소멸한 무기물이라는 식물학자의 설명을 인용한다. 

〔사진=사진작가 이강빈〕

“식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 밑동에서 살아 있는 부분은 지름의 10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바깥쪽이고, 그 안쪽은 대부분 생명의 기능이 소멸한 상태라고 한다. 동심원의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있고, 이 중심부는 나무가 사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 중심부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을 향한 수직으로 버티어 준다. 존재 전체가 수직으로 서지 못하면 나무는 죽는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이다.” 즉, 죽음이 삶을 떠받치고, 삶은죽음으로서만이 가능하다는 사유다. 

〔사진=사진작가 이강빈〕

김훈의 자전거는 태백산맥 미천골에서 한산자를 불러내 도가의 산을 논하고, 퇴계를 떠올리며 유가의 산을 대비시킨다. 봄땅에서 제주도 무당들의 ‘본풀이’를 노래하며 “본풀이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마침내 설명하고 거기에 언어를 부여한다”고 말한다. 늘 혼자서 고산을 오르며 출정 전날은 장비를 점검하며 외로움에 울었다는 유럽 알피니즘의 거장 라인홀트 매스너, 조선 후기의 선지식이자 논객이었고 ‘멋쟁이 승려’였던 초의, 수련을 그려냈던 클로드 모네와 그의 작품을 평했던 바슐라르 등 그는 여정마다 늘 동반자들을 끌어온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경기 남양주군 마현마을에서 만난 다산 정약용과 현재 자전거로가 된 한강변의 곳곳을 포인트삼아 서울의 풍경을 그렸던 겸재 정선은 그 중에서도 더욱 각별하다. 김훈의 문장과 자전거로 만나는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글과 작품, 사유야말로 이 책이 주는 큰 재미의 하나다. 안면도의 소나무숲에 이르러선 추사의 ‘세한도’를 불러내는데, 김훈은 그림 속 소나무가 “그린 사람의 마음의 나무일 뿐”이라며 “그 나무는 가파른 이념의 힘으로 이 세계와의 불화를 뚫고 솟아오르는 정신의 나무”라고 이른다. 이쯤에서 그친다면 역시 김훈의 문장이 아닐진대, “그 나무는 우뚝한 높이만큼 불우하다.”로 맺는다. 이 단순함이야말로 김훈 문장이 가지는 힘이자 매력이 아닐까. 

〔사진=사진작가 이강빈〕

그의 자전거는 산과 강, 바다 전 국토를 다닌다. 태백산맥에 접어들어 장비를 버리면서 “몸의 힘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진대, 장비가 있어야만 몸을 살릴 수 있고, 장비가 없어야만 몸이 나아갈 수 있다”거나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경북 의풍에서 소농사짓는 농부를 보며 “매 맞는 소가 불쌍한지 때리는 인간이 인간이 더 가엾은지, 의풍에서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때리고 맞는 것이 다 한가지로 보였다”고 한다. 경남 고성 마암에선 김용택 시인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만나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부르며 어린 삶의 속깊은 이야기로 들어간다. 그가 만난 이야기엔 IMF로 길을 잃고 노령산맥으로 깃든 팍팍한 삶도 있고, 서해안의 갯벌과 염전에서 생계를 일구는 노동의 합창도 있다. 그의 말대로 자연은 자연대로, 가진 자는 가진자대로, 못 가진이는 못 가진이대로, 죽음은 죽음대로, 삶은 삶대로 ‘모두 자신의 운명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가든(고깃집)과 파크(모텔)과 기지국이 압도적인 풍경이 된 국토”와 “먹고 마시고 러브하고 전화통에 대고 수다떠는 풍경”과 “다들 저도 사람이면서 한사코 사람 없는 자리를 다투다가, 사람 없다는 코스로 너도나도 몰려들어 결국은 인산인해를 이룬” 휴일의 관악산ㆍ북한산에 이르러 지리멸렬한 삶을 경멸하고 냉소하는 듯 하다가, 결국은 ““이승에 남아서 밥벌이를 하자. 벗들아. 그대들을 경멸했던 내 꿈속의 적막을 용서해다오”라거나 “인간에게 절실한 것들, 인간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는 통찰에 이른다.

그것은 여름의 광릉 숲에서 ‘모든 나무들의 개별성을 품고 있는 숲의 전체성’을 목도한 자가, 생사의 모순으로 점철된 인간이라는 종의 전체성 속에서 각자의 운명을 실천하는 삶의 개별성을 찬미하는 방식이리라.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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