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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배 위해 움직이는 ‘산’, 그리고…KPGA에 부는 부활 훈풍
[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장면1. 최경주(44)는 지난 12일 순천 레이크힐스CC에서 자신이 주최한 대회 ‘KJ CHOI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한 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로 후배들의 일취월장한 경기력 때문이다. 이 대회 1,2회 챔피언인 최경주는 “후배들의 실력이 대단해서 깜짝 놀랐다. 이제 나는 국내서 우승하기 어렵겠다”며 농반진반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날 박상현(31) 김태훈(29) 중학생 골퍼 이재경(15) 등 챔피언조의 보기드문 명승부는 갤러리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비슷한 시각,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도신 토너먼트에선 허인회(27)가 일본 진출 후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튿날엔 배상문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2014-2015 시즌 개막전 프라이스닷컴에서 우승하며 통산 2승째를 거뒀다.

#장면2. 지난 9일 순천 레이크힐스 클럽하우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뛰는 60여명의 선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최경주와 후배들의 만남이 예정됐지만, 선수들은 이보다 1시간 먼저 약속장소에 모였다. 바로 남자 투어 흥행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 위해서다. 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26개 155억원)에 비해 절반 가량으로 줄어든 대회수와 총상금 규모(14개 87억원). 한때는 부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뭔가를 해야 했고, 무슨 말이든 나눠야 했다. 물론 당장 해답이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좀더 많은 대회서 뛰고 싶다는 하나의 목표 아래 스스로를 되돌아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사진=KPGA

#장면3. 지난해 8년 간의 드라이버 입스를 극복하고 생애 첫 코리안투어 우승을 차지한 김태훈은 요즘 틈만 나면 인터넷에 접속한다. 훈련 시간을 쪼개가며 하는 일이 있어서다. 바로 골프 동호회 온라인 카페들을 다니며 남자골프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훈은 “회원수가 많은 동호회 카페부터 찾아다닌다. 회원가입을 한 뒤 ‘남자골프대회 보러 와주세요. 오시면 진짜 볼거리 많습니다’ 등의 글을 올린다”며 “처음엔 회원들이 진짜 김태훈 프로 맞냐고 의심하는데, 이젠 다 알고 응원해주신다. 실제로 내가 올린 글보고 대회 보러 왔다는 분들도 계셨다”고 쑥스러워 했다. 김태훈은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작은 것부터라도 해야할 것같았다. 사실은 좀 많이 민망하다. 그래도 대회 오셔서 ‘남자골프 보니 정말 호쾌하고 재미있다. 보는 맛이 있다’고 해주시면 그렇게 고맙고 뿌듯할 수가 없다. 아직도 좀 부끄럽지만 앞으로도 계속 남자대회 오시라고 죽는 소리 좀 해야겠다”고 웃었다.

후배들을 위해 움직이는 ‘산’이 있고, 그 ‘산’을 보며 희망을 키우는 후배들이 있다. 남자 골프에 다시 달콤한 부활의 훈풍이 불고 있다.

최경주는 최근 “1990년대엔 최상호 선배를 비롯해 박남신, 최광수, 강욱순 등 높은 산이 있었다. 지금보다 두세 배는 더 해야 그 산을 넘고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후배들에게 과연 이런 산이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위축된 한국 남자골프에 대한 안타까운 일성이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기분좋은 부활 조짐이 보이고 있다.

우선 뛰어난 경기력이다. 최근까지 세계 최고무대인 PGA 투어에서 최경주(8승)와 양용은(2승) 만이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지난해부터는 2013 시즌 배상문, 2013-2014 시즌 노승열, 2014-2015 시즌 배상문 등 매 시즌 코리안 챔피언이 탄생했다. 골프 관계자들은 “LPGA 투어도 최고의 무대이지만 선수층이나 투어·시장 규모가 PGA 투어의 10분의1 수준이다. PGA 투어 1승이 LPGA 투어 10승과 맞먹는다는 말이 괜한 얘기가 아니다”며 한국 남자 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놀라워 했다. 올시즌 일본 무대에서도 김형성 장동규 김승혁 허인회가 4승을 합작했다. 잇딴 승전보는 국내 투어 관심과 인기상승의 좋은 에너지가 된다.

고참부터 어린 선수들까지 스스로 위기상황을 느끼고 나아지려는 노력도 긍정적인 변화다. 최근 귀국해 한국오픈 출전을 준비하는 노승열은 “최경주 선배, KPGA에서 뛰는 다른 선배들과 남자투어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스폰서·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였다. 선수들이 좀더 스폰서와 팬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스타플레이어 탄생은 투어 부흥의 가장 큰 자양분이다. 지난시즌 ‘대세남’으로 떠오른 김태훈부터 올해 2승을 거둔 김우현(23), 지난해 아마 신분으로 프로 대회서 우승한 뒤 올해 프로 전향한 이창우(21)와 이수민(21), KPGA 2부 투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고교생 박장호(18), 그리고 최경주 대회서 세계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울 뻔했던 겁없는 중학생 골퍼 이재경까지. 스타가 있는 곳에 팬들이 몰리고, 사람이 많은 곳엔 기업들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를 증명하듯 내년 KPGA 코리안투어는 벌써 몸집을 불릴 신호를 내비쳤다. KPGA 관계자는 “아직 발표할 단계는 아니지만 내년에 2~3개 대회 신설이 거의 확정됐다. 여러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올 가을, 남자골프에 부는 기분좋은 훈풍이 내년 시즌 힘찬 부활의 바람으로 커질 수 있을지 기대된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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