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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김문겸> 적합업종은 ‘따뜻한 자본주의’의 출발점
적합업종제도 변질 주장은 오해
대-중기 간 자율적 타협의 산물
불균형으로 왜곡된 시장질서 시정
건전한 경쟁 회복하는 따뜻한 제도



최근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복지정책으로 변질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요약하면 적합업종은 소비자 이익에 반하고 ‘레드 오션을 과밀하게 만드는 악수’이며 이미 폐기된 ‘고유업종제도’의 부활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반시장적 복지정책으로 규제개혁의 취지에도 맞지 않으며 정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1977년 도입됐던 고유업종제도는 대기업은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기간산업에 치중하고, 두부나 장갑 등의 소비재형 업종은 중소기업이 맡도록 법으로 정한 것이다. 이 제도는 1995년 WTO체제가 출범하면서 국제규범에 반하고 경쟁을 통한 기술의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해 2006년에 끝났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행태는 고유업종 폐지의 취지와 다르게 나타났다. 자유무역의 확대에 따라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 새로운 산업을 일으킨 대기업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글로벌 시장을 피하고 협소한 국내시장에 집중한 대기업도 있다. 일부 대기업들은 고유업종제도란 안전장치가 풀리자 생계형 골목상권을 공략해 순대, 두부, 떡집, 콩나물까지 영역을 넓혀 갔다. 결국 대기업의 골목상권공세와 납품단가 후려치기의 행태는 중소기업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게 됐고 급기야 적합업종제도를 불러들였다. 일부 대기업이 주변 사회와 더불어 지속가능경영을 추구하는 협력적 생태계를 외면한 결과다.

여기서 적합업종제도는 법으로 강제하는 고유업종과는 다른 제도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적합업종제도는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의 양보와 타협 속에서 자율적 합의로 이루어진다. 게다가 적합업종은 최대한 6년이라는 일몰제가 적용된다. 적합업종이 소비자 이익에 반(反)한다는 일부 주장은 정말 맞는 말일까? 중소기업이 사라진 후, 대기업이 지배하는 독과점시장은 결국 가격, 자원배분의 문제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까지 예속시킨다. 이로 인한 경제와 사회의 비효율성은 경제학에서 누누이 지적되는 독과점의 폐해다. 경제적 약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독과점을 막으려는 취지의 적합업종이 정의가 아니라면 독과점이 정의란 말인가? 또 중소상인이 무너지게 되면 이들을 위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일반 국민들이 지게 됨을 간과해선 안된다.

대기업이 진출해 순대, 떡볶이 떡, 두부시장에서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시장경제는 아니다. 대기업의 역량은 중소기업이 할 수 없는 영역에 쓰여야 한다. 소상공인의 몰락은 대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보다 더 많은 소상공인들의 일터를 잃게 한다. 시장경제의 원리는 경쟁을 통해서 효율과 효용을 높인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하지만 시장은 만능이 아니며 케인즈의 이론이 지금도 유효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선진국 중에서도 시장의 경쟁을 중시하는 모델도 있지만, 시장질서를 더욱 중시하는 독일식 경제모델도 있다. 특히 2008년 경제위기 이후, 효율을 중시하는 영국과 미국은 심각한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겪고 있는 반면, 시장질서를 중시하는 독일식 모델의 경우 경제위기를 훨씬 안정적으로 헤쳐 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선진국에서 대기업이 골목상권이나 소상공인의 영역에 뛰어든 사례는 거의 없다. 적합업종 제도는 압축성장이 초래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심한 불균형이라는 우리 경제의 특수한 사정에서 나온 것이다. 적합업종 제도는 불균형으로 인해 왜곡된 시장질서를 바로잡는 한시적 제도이다.

경제위기 이후 선진국들은 더불어 사는 ‘따뜻한 자본주의’를 외치고 있다. 낮은 가격과 효율만을 추구할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냉정한 자본주의’이다. 대기업의 진출로 일시적인 효율의 증가는 있겠지만 사회적 안전망이 붕괴될 때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매우 크다. 적합업종의 합의는 ‘따뜻한 자본주의’의 출발이고 건전한 경쟁질서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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