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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압도적 숫자의 힘

한위조(韓魏趙), 이른바 3진(三晉)을 차례로 병탄한 진(秦)나라 왕 정(政, 훗날 시황제). 남방의 강국 초(楚) 정벌군 사령관을 고르기 시작했다. 먼저 백전노장 왕전을 지목했다. 그런데 무려 60만 병력을 요구했다. 온 나라 군사를 다 달라는 얘기다. 반면 젊은 장수 이신은 20만명이면 족하다고 했다. 의심 많은 정이다. 한 장수에게 온 나라 병권을 맡기기는 어려운 노릇. 게다가 이신은 연(燕)을 격파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정의 선택은 이신. 왕전은 낙향한다. 하지만 이신은 초의 항연(훗날 진을 멸망시킨 항우의 조부)에 대패한다. 결국 정은 낙향한 왕전을 찾아 몸을 숙인다. 이후 왕전은 60만 병력으로 초를 강력히 압박, 지구전 끝에 멸망시킨다.

오다 노부나가가 암살당한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코마키ㆍ나가쿠테에서 정면대결한다. 첫 전투에서 이에야스가 승리하지만, 3배 이상 많은 병력을 동원한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의 편에 섰던 노부나가의 아들 노부가츠의 투항을 이끌어 내며 최종 승자가 된다. 원정에 나설 때마다 늘 숫자로 상대를 압박하는 것은 히데요시의 장기였다.

사실 경제에는 투자만한 보약이 없다. 그런데 우리 경제도 이제 규모가 커져 수 천 억원 정도로는 별 반응이 없다. 조 단위 쯤이면 잠시 눈길을 줄 정도가 될까. 이런 가운데 지난 달 현대차그룹은 총개발비 20조원에 육박하는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 개발에 나섰다. 이달에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 하나 짓는 데만 16조원이 투자되는 평택고덕산업단지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전쟁 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압도적인 숫자는 그 자체로 사람을 압도한다. 재계의 간판들 다운 모습이다.

물론 숫자의 우위가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83만 대군을 동원한 조조가 겨우 10만 병력의 유비ㆍ손권에 진 적벽대전(삼국지연의 기준)이, 전진(前秦) 황제 부견의 80만 대군이 동진(東晉)의 사현이 이끄는 8만에 패한 비수대전이 그랬다.

조조는 육군으로 수전(水戰)을 치르려 했고, 부견은 숫자만 밑고 상대를 깔봤다. 압도적인 숫자를 다룰만한 압도적인 경영능력이 중요한 까닭이다. 다행히 삼성은 이미 여러차례 투자에서 늘 상대를 앞서왔고, 그 결과 시장을 선점했다. 현대차그룹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DNA를 입증해왔다.

기업들이 남는 현금을 금융시장에 굴려봐야 저금리 시대에 자기자본수익률(ROA)만 갉아먹을 뿐이다. 배당 늘리는 것도 좋지만, 우리 국민보다는 해외투자자들 지갑에 더 많은 돈을 채워줘야하는 게 현실이다.

다른 기업들도 이참에 통 큰 투자에 나서길 기대해 본다. 기업의 투자는 경영자들에게도, 개인에게도 최고의 화식비결(貨殖秘訣)이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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