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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의리(義理)의 가치
초(楚) 장왕(莊王)이 기원전 7세기 사실상 속국이던 진(陳)에 출병한다. 내부 반란을 진압해 사직의 질서를 회복시켜준다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진을 점령한 장왕은 땅 욕심이 났던지 초나라와 합병을 선포한다. 이 때 신숙시(申叔時)라는 사람이 유명한 ‘혜전탈우(蹊田奪牛)’의 얘기로 장왕을 설득, 결정을 번복시켰다. 남의 소가 내 밭을 조금 훼손했다고 그 소를 빼앗을 수 없다는 논리다. 내란 진압을 명분으로 국경을 넘었는데, 그 나라를 뺐는다는 것도 앞 뒤가 맞지 않다. 덕분에 장왕은 당대의 지도자로 꼽히는 춘추오패(春秋五覇)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동부제철 주인이 바뀔 모양이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부실을 초래한 경영진과 대주주 책임을 물어 김준기 회장 등 동부 측 지분을 불태워버리고, 꿔준 돈 일부를 주식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잘못에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하다. 동부제철은 전기로에 대규모로 투자를 했는데 업황 악화와 전기료 인상 등으로 수익이 악화되고 빚만 늘었다.

최근 채권단이 실사한 상반기말 재무상황은 빚이 자산보다 5000억 원 많다. 자본 잠식이면 출자전환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상반기말 동부제철이 공시한 재무제표를 보면 자산이 빚보다 1조2000억 원이 많다. 순자산이 자본금보다 많아 전혀 자본잠식이 아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분식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채권단 실사 기준이다. 자산 평가때 장부가보다 낮은 공시지가를 적용했고, 적자 공장 가동을 중단시킨다고 가정했다. 더 엄격한 평가 잣대에 미래의 가정까지 덧씌운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6000억 원이나 많고, 채권단에 빌린 돈을 못 갚을 부분은 3% 미만이었다. 떼일 돈은 얼마 안되는 데 프리미엄까지 붙을 1대주주 지분을 갖는다면, 채권단으로서는 크게 남는 장사가 될 확률이 높다.

반대로 동부는 억울할 수 있다. 동부는 지난 해 채권단에 자산을 팔아 빚을 갚겠다고 약속했다. 그랬더니 산은이 도와주겠다며 자산매각 권한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산은이 주도한 동부인천스틸과 동부발전당진 매각은 잇따라 좌초했다. 자산매각 차질로 구조조정의 골든타임(Golden Time)을 놓치면서 동부제철은 신용등급이 추락, 시장에서 돈을 조달할 길까지 막혔다. 산은 탓에 상황이 더 악화된 셈이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산은도 잘한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초 장왕의 진 출병은 옳음(義)이 명분이었다. 한때 땅을 탐내 이익(利)를 추구했지만 결국 순리(理)를 따랐다. 산은이나 금융기관이 기업 경영권을 많이 가져봐야 국부에 큰 도움은 안된다. 임시주인 아래에서 투자와 고용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인으로부터의 경영권 박탈은 의리(義理)를 따라야 한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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