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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 칼럼-차문현> 돈 버는 기술, 돈 쓰는 예술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라는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무려 10조5500억원에 낙찰받아 화제다. 5조원대 초반을 써낸 것으로 알려진 경쟁사와 비교할 때 현대차가 너무 오버(?)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많았다.

그날 지인들과의 저녁 모임에서도 자연스레 현대차 이야기가 나왔다. 농반 진반으로 ‘10조원을 쓴 실무자는 아마도 회사에서 잘리지 않겠냐’는 결론을 냈다. 주식시장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당일에만 현대차 주가가 무려 9.17% 하락했다.

하지만 이튿날 알려진 10조원의 의미는 나 같은 범인(凡人)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정몽구 회장의 기준점은 투자이익이 아닌 그룹의 미래였던 것이다.

정 회장에게 이번 결정은 그룹의 얼굴을 ‘울산 공장’에서 ‘강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현대차는 이곳에서 글로벌 컨트롤타워 기능을 확보하는 동시에 한국판 ‘아우토슈타트’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저 차를 많이 만드는 회사가 아닌 신뢰받는 브랜드로서 한 단계 혁신하려는 출발점인 셈이다.

결국 이번 결정은 100년을 내다본 현대차의 통 큰 승부수로 보인다. 인수 금액이 너무 높지 않느냐는 의견에 대해 정 회장은 “돈이 공기업인 한전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말했단다. 역시 ‘큰 장사꾼’ 다운 베팅이다. 한편으로는 정말 돈 쓸 줄 안다는 생각이 든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돈은 곧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 자체가 행복은 아니다. 행복은 돈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가진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같은 돈을 가지고도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조금 더 행복한 이유는 결코 그들보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가진 돈으로 무언가를 더 이룰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돈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아무리 많은 돈도 그저 쌓아두면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돈의 가치는 사용할 때 생긴다. 먹고 살기 위해 버는 돈은 나의 생명을 살리는 돈이고,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일에 쓰는 돈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돈이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정말 필요한 곳에 쓰면 그 돈은 무엇보다 가치있는 돈이 된다.

‘돈 버는 것은 기술, 돈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예술 작품이 영원히 남는 것처럼 돈도 좋은 일에 쓰면 영원히 가치가 남게 된다. 이동찬 코오롱 그룹 명예회장이 고희에 펴낸 자서전 제목은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어렵다)’이다. 그는 “돈 벌기도 어렵지만 돈을 보람있게 쓰기는 더 힘들다. 영원한 내 것은 없다. 내 것을 갖기 위해 일하며 투쟁했지만 성취한 다음에는 남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 버는 기술보다는 돈 쓰는 예술일지도 모른다. 돈을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결국에는 돈을 잘 벌 수 있기 때문이다. ‘10조 베팅’이 옳은 판단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은 현대차그룹의 숙제로 남았다. 하지만 기업이나 부자들이 좀체 돈을 쓰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100년 미래를 내다본 정 회장의 결정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정 회장의 통 큰 결정이 돈을 가치있게 쓰는 모범으로 남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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