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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빈 카운터(bean counter)’와 느림의 미학

  • 기사입력 2014-09-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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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딜로이트안진 마켓 및 산업총괄본부 대표

얼마 전 대전으로 출장을 갔을 때다. KTX에 오르고 나서야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차를 타던 내내, 그리고 고객을 만나는 시간 동안 밀려오는 불안감과 답답함 때문에 요즘 말로 ‘멘붕’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주로 스마트폰으로 업무상 메일을 확인하고 처리하는 것이 생활화돼 있다 보니 중요한 메일이 와 있지는 않을까, 급한 전화가 부재중 통화로 남아있지는 않을까 하는 등의 염려들이 서울로 되돌아오고 휴대전화를 찾는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그런데 막상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니 시초를 다투는 메일도, 업무상 문자도, 다급한 통화도 전혀 없었다. 비록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부질없었던 답답함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미국에서는 회계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가리켜 ‘빈 카운터(bean counter, 콩 세는 사람)’라고 한다. 비속어(slang)의 일종으로 ‘콩알을 하나하나씩 셀 정도로 꼼꼼하고 치밀하다’는 회계업무의 특성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다.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자면, 필자 역시 회계사가 되기 이전까지는 꽤나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회계사로 일하면서 성격도 변했다. 지금은 영락없는 ‘빈 카운터’임을 인정한다. 직업을 통해 침착성과 인내심, 끈기를 배운 셈이다.

시계 바늘을 30여년 전 과거로 돌려보자. 지금의 잣대로 보자면 당시 사회는 한 마디로 ‘느려터진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휴대전화라는 것이 없던 대학시절, 여자친구 집으로 전화를 거는데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데이트 신청에서 가장 만만한(?) 방법은 학교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학보에 쪽지 한 장을 넣어 상대방 학교로 보내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내일 만나자’는 말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당시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았던 서울 광화문 일대의 클래식 음악감상실에는 그렇게 쪽지 한 장 보내놓고 여성을 기다리는 남성들이 즐비했다. 성냥으로 탑 하나를 쌓을 즈음에 상대 여성이 나타난다면 그야말로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약속 장소에 못 나오는 일이 생겨도 딱히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그 시절, 몇 시간 동안 성냥탑 쌓기만 반복하다가 자리를 뜨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무작정 시도한 데이트 신청이라면 더욱 그랬다.

우리 세대에게 ‘아날로그적 낭만’이었던 추억의 조각들은 요즘 젊은층에게 비효율의 극치로 비쳐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런 삶의 방식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개팅을 하기도 전에 카카오톡 문자로 상대방의 정보를 파악하고, 심지어 ‘퇴짜’까지 전 과정을 진행하는 ‘LTE 세대’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지 모르겠다.

속도가 한국 사회의 경쟁력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우리는 빠른 것이 아니라 급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닫히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오는 사람을 뻔히 보면서도 닫힘 버튼을 누르는 우리의 성급함은 소통의 단절을 부른다. 집에서도 각자의 방에 앉아 부모와 문자로 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젠 흔한 장면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는 1990년대 중반 어느 인터뷰에서 “컴퓨터는 결국 계산의 도구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이후 인터넷이라는 ‘기술 수단’은 세계를 가공할 속도로 연결시켰고,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를 탄생시켰다. 인터넷과 SNS가 사회적 소통의 동맥이 되면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란 개념도 등장했다.

하지만 집단지성이라는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 왕따’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급해지고 SNS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이런 모습은 잡스가 원했던 커뮤니케이션의 이상향은 아닐 것이다.

시계바늘을 다시 2014년 오늘로 돌려보자. 문자도 오지 않는 휴대전화 화면을 무의식적으로 체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답장이 늦으면 짜증부터 나는 사람들. 문명의 이기로 조급해진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콩알을 하나하나 세면서 인내심을 배웠던 ‘빈 카운터’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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