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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전을 향한 노작, 이중섭 신화의 안과 밖 ‘이중섭 평전’
이중섭 평전(최열 지음, 돌베개)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1956년 9월 6일 목요일 오후 11시 45분. 서대문 서울적십자병원 311호실에서 마흔한 살의 이중섭(1916~1956)이 먼 길을 떠났다. 그날 낮 비가 내렸고 밤부터는 태풍 엠마가 서남해안을 위협하고 있었다. 고독마저 사라진 텅 빈 공간, 공허만 멤돌았다. 싸구려 관 앞에 초 한 자루 켜 있었다. 그 순간, 311호 병실을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병원에서는 이 사람을 무연고자로 분류했다. 세상에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 무연고자. 연락할 데조차 없었으므로 곧장 시신 안치실인 ‘영생의 집’으로 옮긴 다음, 절차에 따라 공고했다. 영생의 집 칠판에 아무렇게나 써놓은 글씨는 간략했다.

1956년 9월 6일 오후 11시 45분. 간장염으로 입원 가료 중 사망. 이중섭 40세.”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던 고독한 임종을 경계하고 ‘살아서는 귀재’와 ‘죽어서는 요절천재’가 있었다. “이중섭이 사망하기 한 해 전인 1955년 1월 30일 당대 가장 유력한 평론가 이경성은 이중섭에 대하여 ‘우리 화단의 귀재’라는 호칭을 헌정”했고, 그가 떠난지 73일째 날인 11월 18일 망우리 기념비 제막식에 즈음해서 한 신문은 “천재적 화풍을 지니면서 불우하게도 요절”했다고 고인을 기렸다.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학자인 최열(58)이 기록한 화가 이중섭의 죽음과 그 이후다. 16일 출간예정인 최열의 ‘이중섭 평전-신화가 된 화가, 그 진실을 찾아서’는 932쪽, 원고지 4천매의 방대한 분량에 출판사의 소개글대로 ‘이중섭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 한 야심만만한 기획이다. 이중섭이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의 삶과 예술, 사랑과 이별 뿐 아니라 사후 신화의 탄생과 그 진실까지 추적했다. 


저자 최열은 책 앞머리에서 “이중섭이 세상을 떠난 다음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이 만들어낸 이중섭 신화는 이중섭이 아니다”라면서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필요한 건 황폐한 시절을 견뎌낼만큼 순결한 영혼이었고 그 기준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이중섭이었다”고 썼다. 이어 “이중섭의 생애는 전설이 되었고, 작품은 신화가 되었다”며 “미술계 사람들은 신화의 늪에 빠진 이중섭을 구출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나의 이중섭 평전은 여기서 시작한다”고 했다. 저자는 “최초의 목적은 ‘사실로 가득찬 일대기’”였으며 집필을 거듭하며 “전기작가들이 꿈꾸는 ‘평전’ 그 이상에 도전”했고, “정전正典, 다시 말해 ‘이중섭 실록’을 완성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라고 했다. 


그 말대로 자료의 집성에서 이 책에 견줄만한 다른 예를 찾기 어렵다. 이중섭에 관해 참고한 주요 문헌은 500여종에 이르고, 이것을 바탕으로 마디만 잘라 신화화된 생애를 사실로 엮고 줄기로 다듬어 복원했다. 평남 평원에서 태어나 평양과 정주, 원산을 거쳐 도쿄와 서울, 부산, 서귀포, 통영, 진주 등을 떠돌며 유랑민의 삶을 살아야 했던 이중섭의 행적 뿐만 아니라 그의 사고와 정서, 화풍에 스며들었던 당대 도시의 문화 지형까지 살폈다. 그 와중에 추측과 환상으로 채색됐던 삶의 주요한 순간들을 낭만으로부터 구해내 사실로서 확인했다. 예를 들어 이중섭이 오산고보에 진학한 것은 민족정신을 추구하는 학교의 이념 때문이었다는 설에 대해서 저자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즉 이중섭이 평양 제 2고등보통학교에 두 차례 연이어 낙방하고 난 뒤 외할아버지 이진태와 오산고보 설립자인 이승훈과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산고보에 진학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도쿄 유학 시절 도쿄미술학교가 아닌 제국미술학교와 문화학원으로 옮긴 것은 민족 정신이 투철하거나 재야파를 선호하는 자유로운 기질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입학이 쉬웠거나, 부진한 성적으로 정학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자신의 작품이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됐다는 사실을 알고 대수롭지 않은 척 반응했다는 것도 사실무근이며 살아 생전에는 아예 그 사실을 몰랐다는 진실도 밝혀냈다. 

[사진 제공=돌베개]

직접 쓴 편지와 지인들의 회고 등을 통해 이중섭이 평생 느꼈던 고독과 기쁨, 환희, 좌절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그와 그의 작품을 둘러싼 당대 한국 사회와 미술계의 시선과 반응이 세세하게 조명됐다. 말년에 그의 뇌와 삶을 잠식했던 정신병의 발병과 투병기까지 낱낱히 담아냈다. 화가로서,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역사 격랑기의 지식인으로서 이중섭의 유랑했던 삶에 가장 입체적인 기록이자 보고서이며, 현재로선 완성체에 가장 근접한 평전이자 노작으로 꼽을만하다. 방대한 참고 문헌 목록과 이중섭의 생전 사진, 원색으로 실린 350점의 작품 이미지가 완성도를 더한다.

1916년 9월 16일 태어나고 1956년 9월 6일 타계한 이중섭. 그가 세상과 만나고 헤어졌던 9월, 그 중에서도 그의 탄생 98주년되는 날을 출간일로 잡은 최열의 ‘이중섭 평전’은 독자들에게 남다른 감회를 안길 것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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