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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김형곤> 인문학이 정작 필요한 곳은 금융이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의사 친구는 많이 변해있었다. 조바심을 부렸다. 하는 얘기마다 어떻게 하면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을까였다. 교묘한 탈세수법을 말하는가하면 다른 의사 친구들과 돈을 모아 상가에 투자했다는 얘기까지 들려줬다. 왜 이리 서두르냐고 묻자 나이 50 되기전에 목돈이 됐든 건물이 됐든 뭔가를 만들어놔야하고 주위 동료들도 비슷한 중압감에 빠져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에게는 환자가 오로지 돈이고, 상처의 크기는 수입의 많고 적음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학창시절 시를 곧잘 쓰고 세계사와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냐고 하자 그럴 여유가 없어 관심끊고 산지 오래 됐다고 한다. 소년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완전한 ‘속물’로 변해있었다.

얼마전 만난 모 시중은행장은 이런 얘기를 했다. 행원을 뽑을때 인성이나 가치관이 학위나 스펙보다 더욱 중요함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무슨 말씀이냐고 물었더니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 예컨데 굴지의 국내 대기업이 사회 양극화의 주범이고 노동자를 착취하며 오너의 배만 불린다는 자신만의 논리에 갇혀 대출을 해주지않겠다고 버티면 어떻게되겠냐는 것이다.

요즘 인문학이 화두다. 아니 다시 화두다. 한때 기업이 신입사원을 뽑을때 역사, 문화, 예술은 불피요한 사치품 정도로 여겼다. 최근엔 대기업이 앞다퉈 인문학을 본다고 한다. 현대차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인ㆍ적성검사에서 역사 에세이를 출제키로 확정했다. 역사 에세이를 통해 지원자의 인생관과 직업관, 국가관 등 생각의 깊이를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올해 4대그룹은 인ㆍ적성 검사에서 모두 인문학적 소양을 측정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이공계 출신을 우대하면서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통합형 인재를 찾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인문학이 필요한 곳은 금융이다. 금융은 작년부터 각종 사건사고로 얼룩졌다.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에서부터 일본 동경지점 부당 대출, KT ENS 대출사기, 지급보증 사고, 국민주택채권 위조 및 횡령 등에 이르기까지. 사건사고는 더욱 다양해지고 복잡화, 대담해졌다. 마침 한국금융연수원이 지난 26일 개최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강화 방안 세미나’에서는 내부비리의 사례와 원인이 잘 소개됐다. 최근 금융사고의 특징은 내부통제 소홀에 의한 장기간 사고 은폐, 윤리의식 결여로 직원들 스스로가 범죄행위 가담, 지배구조가 취약한 금융회사에서 사고 빈발, 전통적 유형이 아닌 복합적 구조에 의한 사고 등으로 규정됐다.

내부통제를 대폭 강화한다고 해서 이런 사건사고가 없어질까? 스펙을 쌓느라 들인 천문학적인 비용을 몇번에 만회하겠다는 유혹에 빠진다면 내부통제만으로도 힘들 것이다. 금융인들 내부의 ‘마음 속 악마’는 단순히 준법감시를 강화하고 윤리교육을 더 한다고 해서 치유되는게 아니다. 인문학적 심성이 바탕이 돼야한다. 나와 타인, 소비자와 투자자, 공동체와 국가를 생각할 수 있는 근원이 갖춰져야한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는 경우에 따라서는 일보다 훨씬 중요할 수 있다. 인문학적 소양이야말로 금융인이 갖춰야할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kimh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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