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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류스타 ‘박유천’ 은 없었다… 뱃사람 ‘동식’ 만 보였다
영화 ‘해무’ 빛 나게한 황현규 분장실장의 힘
70%이상이 해상촬영…물과의 전쟁…물 닿아도 버틸수있는 분장에 주력
…관객들이 좋아해주는게 가장 행복



한류스타 박유천이 사라졌다. 영화 ‘해무’에서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을린 얼굴과 후줄근한 작업복 차림으로 여수 사투리를 내뱉는 ‘동식’ 만이 보인다. 김윤식, 문성근 등 베테랑 배우들 역시 완벽한 뱃사람 비주얼 만으로도, 두 시간 여 러닝타임 동안 사념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해무’는 다큐멘터리 못지 않은 사실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진호’ 선원들의 일상을 나열하는 초반은 물론, 인간에게 내재된 짐승같은 본성을 드러낸 후반부도 마찬가지다. 시나리오와 연출, 배우들의 공이 크지만, 극중 인물들에 몰입하게끔 시각적인 설득력을 더한 분장의 힘이 돋보인다.

배우들의 기막힌 변신을 이끈 분장팀의 황현규 분장실장(56)을 만났다. “배에서 촬영이 많다보니 한 달 넘게 멀미약을 매일 먹었어요. 나중엔 멀미약을 안 먹으면 잠이 안 오더라고요”라고 고충을 토로하면서도, ‘해무’ 촬영이 끝나고 개봉하는 사이 또 다른 작품을 뚝딱 해치웠을 정도로 그는 에너지 넘쳤다. 


▶‘해무’, 비정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황현규 실장이 ‘해무’를 택한 것은 시기가 맞았던 이유도 있지만, 그의 사심(?)도 한 몫을 했다. “(캐릭터의 비주얼을) 새롭게 만드는 것도 재미있지만, 약간의 시대적 배경을 끼고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캐릭터를 선호해요. ‘해무’가 그런 작품이었죠.”

그에게 ‘해무’는 사회적인 인식,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남달랐다. “이 시대에 종종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죠. ‘해무’에서와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거든요. 가공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지만 ‘해무’는 현실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또 다르게 다가온 작품이에요.”

‘해무’의 시대적 배경은 1997~2000년 외환위기 당시. 황 실장은 기본적으로 당시 자료를 많이 찾아보려고 애썼다. “요즘 선장님들은 깔끔하게 다니시고 멋도 많이 부리시더라고요. 손에서 나는 생선 냄새가 싫어서 네일 케어를 받으시는 분들도 있고. 그렇지만 ‘해무’는 10여년 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야 하고, 뱃사람에 대해 관객들이 기대하는 이미지와 너무 달라도 몰입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절충안을 찾았죠.”

▶“전체 70% 해상 촬영, 물과의 사투”=‘해무’ 속 캐릭터들의 콘셉트를 잡는데 중점을 둔 부분은 단 하나였다. 실제 뱃사람의 비주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

다만 전체 촬영의 70% 이상의 분량이 해상 촬영으로 진행되다 보니 변수도 있었다. “사실 처음에 콘셉트를 잡는 것보다 더 신경 쓰였던 게 ‘물’(水)에서의 (분장) 지속력이었어요.” 갑판 위에서 폭우를 그대로 맞거나 배 안으로 밀려드는 바닷물과 사투를 벌이는 등 물과 싸워야 하는 장면이 많았다. 촬영 흐름을 끊으며 분장을 매번 손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물이 닿아도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분장에 공을 들였다.

여섯 선원들의 개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장치에 대한 고민도 컸다. ‘철주’(김윤석 분)는 한 때 잘 나가던 선장으로서의 카리스마, 밀항일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서글픔과 배를 분신처럼 여기는 뱃사람의 자존감이 혼재된 인물이다. 이같은 복합적인 면모 때문에 콘셉트를 잡기 가장 까다로웠던 인물이기도 했다. ‘경구’(유승목 분)는 파마 머리에 몸빼바지를 입는 등 멋부리는 모습으로 속물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창욱’(이희준 분)은 팔뚝에 문신이 있는데 새기다 아파서 중간에 그만둔 것 같은 애매한 모양이다. 본능에 충실한 창욱의 캐릭터를 엿보게 하는 대목인 셈. 이 모든 게 분장팀이 여러 안을 만들어놓고 인형놀이하듯 붙여보고 바꿔보며 고민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특히 박유천의 경우 아이돌 출신이다보니 분장하는 입장에서 부담도 있었을 법 했다. 황 실장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유천이를 보는 순간 ‘동식’의 얼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마더’ 때 원빈을 두고 감독님이 고민할 때, ‘시골에도 가끔 저렇게 잘생긴 유형이 있다’고 하면서 작업했거든요. 어떤 배우든 가만히 들여다 보면 영화에 필요한 그 얼굴이 있어요.”

▶“일하면서 행복 느끼는 건 특권이죠”=분장일을 20년 넘게 했지만, 황 실장은 여전히 자신에게 인색했다. “작품을 끝내고 한번도 만족스러웠던 적은 없어요. ‘그 때 이렇게 할걸’, ‘그 때 내가 좀 더 치열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분장팀 역시 촬영팀이나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몇 개월씩 살다시피 해야 한다. 특히 황 실장은 최근 몇 년간은 작품 사이 공백이 없어 그야말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현장에서 가장 에너지 넘친다. “어떤 배우에게 많은 것을 덧붙여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사람이 가진 모습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 더 재밌어요.” 조연이나 단역 배우들도 외양을 많이 바꿔주고 싶은데, 다른 작품을 동시에 촬영 중인 배우들이 많아 그럴 수 없는 게 아쉽다고도 그는 털어놨다.

“좋은 작품을 좋은 스태프와 할 수 있는 것도 좋고,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좋아해주시면 행복해요. 일을 하면서 ‘좋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 많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권이겠죠. 얼마 전 봉준호 감독이 ‘90살까지 돋보기 쓰고 일 하셔야죠’라고 했는데 이게 좋은 말인지는 모르겠네요.(웃음)”

황현규 분장실장은?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동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졸업. 독일 뮌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수료. 독일 메피스토 분장학교 수석졸업 /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박하사탕’, ‘비천무’, ‘오아시스’, ‘살인의 추억’, ‘마더’, ‘아저씨’, ‘후궁’, ‘화이’ 등 다수 참여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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