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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책> 포주된 백만장자상속녀, 갤러리간 흑인마약상, 포르노 만드는 갑부도련님
뉴욕 지하경제의 요지경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뉴욕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부자동네로 알려진 어퍼 이스트사이드에서의 2007년 어느 하루. 뉴욕의 예술발전 기금과 명문가의 신탁자금으로 사들인 한 갤러리에서 파티가 열렸다. 할렘의 덩치 큰 흑인의 마약 보스가 청바지에 후드티, 아디다스 하이탑 스니커스를 신고 갤러리에 들어섰다. 동행자는 콜롬비아대 사회학전공의 인도계 미국인 교수. 그들을 반갑게 맞은 이는 백만장자의 후계자이자 하버드대 출신인 백인 미녀였다. 부모로부터 자선재단 상속이 예정된 이 백인 여성의 현재 비공식적 직업은 예일이나 코네티컷 등 명문대출신의 여성들에게 상류층의 유력 남성들을 데이트 상대로 소개해주는, 좋게 말하면 에이전트였고, 알기 쉽게 얘기하면고급 콜걸을 의뢰인으로 하는 성매매알선업자, 즉 포주였다. 그의 남자친구 역시 갑부집 도련님으로 독립영화제작이며, 자금마련을 위해 포르노영화를 찍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마약 보스의 사촌으로 전시에 조각작품을 한 점 내놓았으며 전직인 매춘부, 부업은 코카인판매인 젊은 여성 예술가도 사이좋게 껴 있었다. 성과 인종, 계급, 학력, 문화의 경계가 무색하게 뉴욕의 한 고급 갤러리에서 이루어진 이 기발하며 기괴한 조합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이유만큼이나 중요한 사실은 또 있었다. 바로 경제계 일각에서 도시 경제의 20~40%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지하경제, 즉 뉴욕 경제의 일부인 암시장의 구조와 생태계에 대한 비밀이 바로 이 모임 속에 있다는 것이었다.

대중적 사회학 연구서인 ‘플로팅 시티’(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문희경 옮김, 어크로스)는 민속지학의 방법론으로 탐구한 뉴욕 지하경제의 보고서다. 저자가 바로 이 책의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갤러리 모임의 일원, 인도계의 콜롬비아대 교수 수디르 벤카테시이다. 민속지학이란 특정 집단 내에 구성원들 속으로 직접 들어가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대면 접촉하며, 심층 면접해 사회 현상과 구조를 분석하는 사회학이나 문화인류학의 연구방법론을 의미한다. 저자는 지난 1997년부터 10년간 뉴욕의 포르노숍과 매춘부, 마약상, 이민자, 사교계 명사, 상류사회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구성원들의 삶을 통해 뉴욕 지하경제의 ‘연결망’을 그려냈다. 남아시아이민자인 포르노비디오숍 운영자로부터 시작해 저자는 마치 한 점에서부터 그물을 짜 나가듯 뉴욕 지하 경제를 이루는 최하류층부터 최상류층까지의 거대한 구조와 그림을 완성해간다. 저자는 ‘섹스가 모든 것을 연결한다’고 말하며 성매매업을 뉴욕 지하 경제의 혈류로 진단한다. 노동자계층을 상대하는 거리의 매춘부에서 월스트리트의 전문직 종사자와 부호들을 맞는 호텔의 고급 콜걸이 있듯, 여기서도 ‘신분의 사다리’가 존재하며, 벽은 높고 위계는 엄격하다.

논문이 아닌 대중적 사회학서로서 이 책은 돈과 마약, 매춘, 폭력 등 범죄세계와 밑바닥의 삶, 화려한 성공과 부자의 일상까지 등장하는 한편의 느와르 영화나 소설처럼 개인들의 삶과 도시 사회의 그늘을 묘사하고 분석한다. 탁월한 분석 뿐 아니라 번번히 고꾸라지는 하류계층들의 삶을 보면서 ‘관찰하되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회학자로서 느끼는 고뇌와 번민 등 저자의 감성까지 녹아 있어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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