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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재곤의 스포츠오딧세이> 걷기 그리고 사유(思惟)하기
[헤럴드경제=변재곤 칼럼니스트]걷는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 폭염이 잠시 누그러진 저녁 무렵, 산책로에 나가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긴 줄을 이어놓은 것처럼, 같은 길을 서로 다른 이웃이 간격을 좁히고 늘리고 또 추월하면서 각자 정해놓은 목표점을 향해 걷는다. 건강을 지키려는 의지에 의해 걷는 스포츠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정부는 1일 30분 이상, 1주에 3회 이상 걷기를 권장하고 있다. 각종 성인병이 예방되고, 관절의 근력이 강화되고, 다이어트 효과가 높다고 한다. 실제로 효과를 체험한 사람들은 걷는 운동을 주변 사람에게 적극 권하고 있다. 별반 비용이 필요치 않고, 한정된 공간이 아니기에, 타인의 시선에 속박 받지 않으며, 나만의 시간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가 장장 800km의 산티아고 순례 길을 도보로 걷고 난 후, 큰 영감을 얻어 출간한 책이 바로 ‘연금술사’이다. 책이 유명해지면서 산티아고라는 지명과 함께, 오직 걷고 또 걷는 도보여행이 우리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구도자들은 서쪽을 곧 구원의 종착지로 여겼다. 같은 서쪽방향인 산티아고로 향하는 것은 첫 순교자 야고보의 무덤을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이다. 1개월여를 걷는 그 긴 고행은 삶의 겸허와 물질의 덧없음을 내 안에 받아들여 남은 생(生)의 윤택을 추구할 수 있다고 경험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 이후 아쉬운 대로 제주도에 올레길이 만들어져 산티아고로 향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고 있다. 실제 산티아고로 가기에는 지리적인 여건도 버겁지만 우리의 직장생활이 극히 제한적이라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도 많다. 1개월여의 휴가를 낼 수 있는 신이 내린 직장이 과연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4만 불 이상의 국민소득이 보장돼야 그나마 직장인들에게 실현 가능한 코스일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사유를 동반케 한다. 길이 길면 길수록 한층 더 자신을 탐구할 소요(所要)가 더욱 깊어진다. 나 역시 중랑천변을 저녁마다 몇 년째 걷고 있다. 산책로는 건조하게 곧고 길게 뻗어 있고, 발바닥의 건강을 전혀 고려할 수 없는 단순 아스팔트길이다.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은 협소하다. 비가 오는 호젓한 날에 홀로 걷는 호사가 아닌 이상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들어오기 힘들다. 그저 암묵적으로 걷는 행위에 불과하다.

서울이라는 곳에 태어나 지금껏 벗어나 본적이 없는 도시인에게는 이 도시를 감히 버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천편일률적인 아스팔트 산책길이 아닌 좁은 소로(小路)를 개발했으면 한다. 수목이 적당히 우거진 작은 공원을 지나면, 장인정신으로 음식과 물건을 만드는 조그만 가게가 나오고, 더 깊이 들어가면 협소한 책방과 도서관, 그리고 주민이 운영하는 동네 미술관이 있는, 그런 길 말이다. 정취가 머물고 정경이 숨 쉬고 생의 충만함이 가득한 그 길의 치유와 행복을 느끼며 걷고 싶다. 시작이 반이다. 동네의 새 역사를 창조할 지자체장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는 누구인가. 

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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