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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투표권도 없는 후보자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7ㆍ30 재보궐선거 출마 후보자가 투표권을 상실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새누리당 나경원(서울 동작을), 새정치민주연합 백혜련(경기 수원을)ㆍ권은희(광주 광산을) 세 후보도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극심한 눈치보기 전략공천으로 해당 후보들이 선거인 명부 작성 기준일인 ‘선거일 전 22일’까지 주민등록지를 옮기지 못한 결과다. 하긴 어디로 공천될지도 모르는 판에 주소지를 미리 옮겨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하튼 공식 선거전이 시작됐고, 사활을 건 후보들의 득표활동이 한창이다. 지금 우리는 투표권도 없는 후보가 지지를 부탁하는 참으로 낯 뜨거운 광경을 두 눈 멀쩡히 뜨고 보고 있다.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다.

지난 해 10월 경기도 화성 보궐선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기는 했다. 새누리당 서청원 후보가 전략공천 낙하산을 타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선거일을 불과 열흘 남긴 시점, 당시 민주당은 ‘서청원 후보가 투표권이 없다’며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민주당은 멋쩍게 사과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 됐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 공천을 받고 허겁지겁 내려왔으니 그런 헤프닝이 벌어질만도 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서 후보를 몰아세운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이다. 그는 “투표권도 없는 후보가 나서는 것은 화성시민에 대한 모독이며 그런 후보가 지역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역 주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또 “국회의원은 국민이 직접 뽑는 선출직이며 해당 지역구에 살면서 몸을 담은 후보가 선출되는 게 당연하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서 후보는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못한 ‘자격미달 철새 정치인’이라고 비난했다.

하긴 어디 한 군데 나무랄 데가 없는 맞는 말들이다. 후보자가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라면 자격을 따지기 이전에 유권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다. 한데 민주당에서 이름을 바꾼 새정치연합이 이제 거꾸로 같은 비판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그 대응이 자못 궁금하다. 물론 당 대표까지 나서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흥분했던 새누리당도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정치판 공천에 신의와 원칙이 사라진 건 물론 기대를 접은지도 이미 오래다. 정치적 이해와 꼼수, 권력 지형에 따라 제멋대로 춤을 추는 게 공천 아닌가. 특히 이번 재보선 공천은 3류 정치의 결정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려막기에 갈라먹기, 보상공천에 살생공천 논란까지 나올 수 있는 구태는 다 나왔다. 입만 열면 국민을 외치면서 정작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그 오만함에 신물이 난다.

마침 정의화 국회의장이 제헌절 기념사를 통해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정 의장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대전환과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정치도 생산성을 높이고 생존을 위한 경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국회의원 선거방식과 공천제도로는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유권자 빼고 다 바꿔야 한다. 그래야 정치판도 국민도 다 살 수 있다.

정재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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