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가계돈은 은행에, 기업돈은 금고에…소비 · 투자 꽉 막혔다
수신금리 年2.59% 사상최저 불구
가계예금 521조 사상최대 ‘아이러니’…돈굴릴 곳 없어…단기유동성 키워
가계부채 1025조…소비여력 저하
투자 인색 기업 사내보유금 471조…주식 거래량 등 급감…자본시장 술렁


회복 기대감으로 출발했던 한국경제의 분위기가 반년만에 반전됐다. 미국 등 선진국의 성장세가 예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상반기 세월호 사고로 소비 등 내수가 직간접적 타격을 받았다. 하반기 들어서자마자 엄습한 세자릿수 환율 공포는 수출기업들의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면서 4%대 성장은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관측이다.

여기에 불확실성을 이유로 가계와 기업 모두 소비와 투자에 나서지 않으면서 자금이 경색되는 ‘돈맥경화’징후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맥박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리 최저인데 예금은 쌓여만가고=수신금리가 사상 최저인데도 은행예금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은 자금경색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예금에 저축된 총 가계예금은 지난 4월말 현재 521조2000억원으로 197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로 최대 규모다. 1년전보다 무려 41조원 넘게 증가한 규모다.

그런데 국내 은행의 수신금리(신규취급 저축성수신 기준)는 5월 현재 연 2.59%로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96년 이후 가장 낮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금리가 사실상 ‘제로’인데도 예금이 느는 기현상은 그만큼 돈 굴릴 곳이 없어 투자를 단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포트폴리오 면에서 채권 등 다른 곳을 찾아봐도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예금으로 자금이 몰리는 것”이라며 “보통 경기가 안 좋을 때 예금 등이 증가해 단기유동성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예금회전율도 작년 3분기에 7년만에 최저치(3.6회)를 기록한 뒤 올 1분기 현재(3.7회)도 4회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예금 회전율은 인출 횟수를 근거로 일정기간 중 시장에서 돈이 얼마나 활발히 돌았는지를 보여준다.

▶가계 지갑닫고, 기업은 금고쌓고=이미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증가세도 가계의 소비여력을 저하시킨다. 올 1분기 가계부채는 1년 전에 비해 60조원이 증가한 1025조원에 육박했다.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가계부채가 소비와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임계치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85%에 달하면 위험 수준으로 볼 수 있는데, 2013년 현재 우리나라의 GDP(신기준)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85.6%다.

물가 오름폭을 반영한 실질임금 상승률도 2년 3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지난 1분기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의 근로자 1인당 실질임금은 월평균 299만4043원으로 작년 같은 분기의 294만2146만원보다 5만1897원(1.8%) 늘었다. 마이너스를 기록한 2011년 4분기(-2.4%) 이후 9개 분기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의 물가 상승세가 가파르지 않았음에도 이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그만큼 근로자 임금의 신장 속도가 더디다는 얘기다. 실질임금이 정체하면 가계소득 증가율도 둔화되고, 이는 결국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 줄어 내수 부진으로 이어진다.

투자에 인색한 기업들의 사내유보금 규모는 천문학적 수준에 올라와 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의 금융사를 제외한 82개 상장 계열사의 사내유보금은 작년말 현재 471조원이다. 2012년보다 41조원 늘었다. 기업들이 금융위기 이후 경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보수적 투자성향을 좀처럼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기준 지난달 설비투자는 전월대비 1.4% 감소했다.

▶자본시장도 ‘불황의 늪’에 허우적=이렇다보니 자본시장이 활기를 잃은지 오래다. 지난 상반기 유가증권시장의 일평균 거래량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9.21% 급감했다. 주식을 사고파는 ‘손바뀜’도 2011년 이후 하락세를 이어갔다.

투자자들이 투자를 하지 않은채 관망만하거나 펀드에서 자금을 빼다보니 투자위축→주식시장 침체→기업 자금조달 애로→기업 성장 및 이익 감소→임금 정체→투자여력 감소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경원 기자/gil@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