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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준면 “음악 속에서 나는 온전한 주연으로서 자유롭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배우들의 가수 외도는 외부의 삐딱한 시선을 동반한다. 이 같은 시선은 외도가 말 그대로 외도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일은 OST 참여나 싱글 발매 등 대개 일시적 이벤트에 불과했다. 적당히 부르고 적당히 화제를 모은 뒤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배우들의 외도가 상업적인 성공을 넘어 음악적으로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은 사례는 드물다.





뮤지컬 배우 출신 싱어송라이터 박준면의 첫 정규 앨범 ‘아무도 없는 방’은 외도를 향한 삐딱한 시선에 진정성이라는 정공법으로 경종을 울린다. 늘 무대 위에서 노래와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이지만 자신의 곡을 모두 직접 만들고 편곡에 앨범 디자인까지 직접 챙기는 것은 외도와는 다른 차원의 얘기이니 말이다. 얼굴은 익숙하지만 이름은 낯선 조연 배우들 중 하나였던 그는 온전히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의 연출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제대로 품격을 갖춘, 좀처럼 보기 드문 성인 음악이 탄생했다. 또한 이 앨범을 통해 우리 대중음악계는 흔한 배우 출신 가수가 아닌 좋은 음악을 만드는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하나를 얻게 됐다. 박준면을 지난 4일 서울 서교동 카페 ‘모과나무위’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박준면은 “2년 전 평소 친분이 있던 가수 강산에가 어느 날 술을 먹다가 지나가는 말로 곡을 한 번 써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 작곡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며 “마치 숙제검사를 맡듯 강산에에게 만들어 들려준 곡이 예상 외로 호평을 받은 데 고무돼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곡을 써내려갔다”고 말했다.







박준면이 강산에에게 들려준 곡은 낮술을 마시고 지하철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던 중년 남성의 모습을 반추하며 만든 ‘낮술’이다. 복고풍 하몬드 오르간 연주에 실린 가사 “낮술 자신 아저씨 흥얼거리네 여기는 지하철 오후 3시”가 술에 절은 냄새까지 전달하는 듯한 이 곡은 박준면의 내부에 오랫동안 잠재돼 있던 창작의 물꼬를 터뜨렸다. 이후 마치 준비라도 돼 있던 것처럼 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박준면을 오랫동안 매혹시킨 음악은 강렬한 록 사운드와 블루지한 느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레드제플린(Led Zeppelin)의 음악이었다. 무대에서 벗어난 뒤 찾아오는 뒤풀이의 숙취와 뒤섞인 공허함을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음악으로 풀어냈다.

박준면은 “오랫동안 뮤지컬 무대 위에 섰기 때문에 장르와 관계없이 많은 음악들을 접해왔을 뿐만 아니라, 독학으로 피아노를 공부했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은 여느 뮤지션 못지않았다”며 “피아노 앞에 앉기만 하면 갑자기 신들린 사람처럼 멜로디와 가사가 튀어나오는 시간들이었고 이번 앨범은 그런 시간들과 내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비 오는 날 우산 아래에서 다툰 연인 사이의 아슬아슬한 침묵을 블루스 풍의 멜로디로 그린 ‘우산은 하나’, 텅 빈 방으로 문득 찾아 든 사무치는 외로움을 긴장감 넘치는 멜로디와 절규 섞인 보컬로 표현한 ‘아무도 없잖아’ 등 예사롭지 않은 곡들이 하나하나 완성돼 나갔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박준면의 곡을 모니터링 하던 뮤지션들은 술 냄새와 땀 냄새가 깊게 배어 있는 그의 음악에 하나둘씩 진지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곡을 아깝게 그냥 두지 말고 디지털 싱글이라도 발표해보라는 뮤지션들의 목소리가 점점 늘어났다. 자작곡의 수가 두 자리 수를 넘어가자 박준면은 정규 앨범을 발표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박준면은 “나는 비록 조연이지만 20년 가까이 배우 생활을 해왔고 조연이라는 역할을 사랑한다. 그러나 배우로서 나는 늘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존재였다”며 “내 음악 속에서만큼은 온전히 내가 주인공이었다. 나는 나이 마흔이 넘기 전에 내게 선물을 하나 주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동갑내기 친구인 밴드 오메가쓰리(Omega 3)의 멤버 고경천이 프로듀서와 키보드 연주 및 편곡으로 나서 앨범 제작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여기에 민재현(베이스), 이기태(드럼), 김홍갑(기타) 등 정상급 연주자들이 연주로 힘을 보탰다. 박준면은 믹싱에만 두 달 이상의 시간을 들이는 등 이번 앨범이 마지막 앨범일 수도 있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제작에 매달렸다.

박준면은 “처음에는 일종의 기념 앨범을 만들어보자는 의도로 가볍게 제작에 나섰는데 믹싱과 마스터링을 맡아준 김남윤 엔지니어가 지금의 소속사(칠리뮤직)을 연결해줬다”며 “소속사 측이 내 앨범에 들어갈 곡을 듣고 정식으로 발표해보자고 제안해 오자 이 앨범이 기념 앨범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뮤지션으로서 검증을 받은 것 같아 자신감도 생겼다”고 했다. 이어 박준면은 “작곡을 시작한 계기는 강산에 때문이지만, 음악적으로 멘토 역할을 해준 사람은 고경천”이라며 “신인 뮤지션임의 깐깐한 요구를 모두 너그럽게 받아 준 고경천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재킷 디자인이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안에서 창밖의 화려한 간판을 바라보는 나체의 여인은 음악 이상으로 복잡한 감정을 청자에게 전달한다. 이 재킷은 음악과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며 앨범에 공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박준면은 “앨범 재킷이 마음에 들면 음악도 마음에 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재킷 디자인에도 공을 들였다”며 “평소 친분을 가진 양경렬 작가에게 앨범 데모를 들려주고 음악에 어울리는 그림을 부탁했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결과물이 나와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이 앨범은 네이버뮤직 상반기 결산 중 ‘2014년 상반기 놓치면 아까운 앨범’, 벅스 ‘이달의 앨범’ 코너 ‘6월의 발라드/팝 앨범’에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박준면은 최근 매주 실력파 뮤지션들을 발굴해 라이브 코너를 마련하는 ‘네이버 온스테이지(On-Stage)’ 무대 촬영을 마치기도 했다.

박준면은 “배우로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잡역을 마다하지 않겠지만, 싱어송라이터로서는 결코 가수 흉내를 내지 않을 것”이라며 “제대로 밴드 라이브를 들려줄 수 있는 무대가 아니면 서고 싶지 않다. ‘진짜’ 노래를 하고 싶고 여건이 어렵더라도 그런 무대를 계속 찾아다닐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준면은 오는 18일 오후 8시 서울 서교동 오뙤르에서 앨범 발매 기념 단독 콘서트를 연다. 그곳에는 조연 배우 박준면이 없다. 이날 콘서트는 게스트 없이 오로지 박준면의 음악에만 집중하는 무대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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