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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먼다큐> 개발 시대 선구자 홍철 주거복지포럼 이사장 “이젠 삶의 질을 추구할 때”
“시골에 집 짓고 살아보니 좋아요. 공기 좋고, 흙냄새도 나고 인심도 좋고.”

주거복지포럼 초대 이사장에 취임한 홍철(68) 전 건설교통부 차관보는 우리나라 개발 시대를 이끌어 온 선구자적 인물이다. 분당과 일산 등 1기 신도시 개발, KTX 개발, 인천공항 개발 등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을 이뤄낸 거대 개발사업에 모두 관여했다.

“그때 신도시는 개발할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내수와 수출이 모두 활황이어서 부동산 투기가 극심했었지요. 그렇게 개발된 신도시가 주택난 해소에 일조했고 KTX하고 인천공항은 지금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죠. 특히 인천공항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헌을 했고요.”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같은 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국토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 청와대 경제비서관, 건설교통부 실장, 건설교통부 차관보를 역임한 뒤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국토연구원장 등 다양한 기관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세상의 중심에서 개발을 주도했던 그가 지난해 시골에 집을 지었다.

“내가 큰 출세를 한 건 아니지만 어느 때부턴가 시골에서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경북 포항 출신이라 일단 경기도는 아니다 싶었고. 2004년부터 대구경북연구원장으로 있을 때 문경이 눈에 딱 들어왔어요. 2가지가 참 마음에 들더라고. 주흘산과 문경새재. 주흘산은 아주 잘 생겼어요. 문경새재길은 노후에 험한 산 다니기에는 그렇고 산책 정도 하기에 딱 좋다 싶었죠.”

홍철 주거복지포럼 이사장. [이상섭 babtong@heraldcorp.com]

그렇게 그는 문경읍의 한 작은 마을에 새 둥지를 틀었다. 첫 귀촌의 터전은 농가주택을 전세 3000만원 주고 구했다. 살아보니 더 좋았다. 결국 인근에 땅을 사 작년 집을 지었다.

지난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가 임기를 다한 작년 초, 시골에 지은 새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다시 대구카톨릭대 총장을 맡아 지금은 평일에 대구, 주말 문경에 가는 ‘주말 귀촌’ 생활을 시작했다. 아들 둘은 장성해 독립했고 함께 사는 가족은 아내 뿐이다. 아내와 ‘평일 대구’, ‘주말 문경’ 생활을 함께 한다.

“요새 문경에서 아내하고 나물 심고 집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시골에 대부분 노인들만 남아 있었는데 요새 귀촌 바람이 불면서 젊은 사람들이 조금씩 다시 들어오고 있어요. 그런 와중에 우리 같은 노인들이 할 일이 있지 않겠나 싶어요.”

그는 “이제 시골 사람들한테 힘을 조금이라도 실어주는 게 남은 할 일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저는 요즘을 신(新) 의식주의 시대라고 생각해요. 의식주라고 하면 옷, 음식, 집이죠. 신 의식주에서의 의는 의료입니다. 이제 밥 굶고 하는 세상은 아니잖아요. 지금은 빈부를 막론하고 누구나 의료 서비스를 잘 받을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게 제일 시급해 보여요. 부자들은 알아서 잘 사니 크게 신경쓸 게 없죠.”

그에 따르면 신의식주의 ‘식’은 친환경 음식 등 좋은 먹거리, ‘주’는 최소한의 삶의 질이 보장되는 주거 환경이다.


“옛날 양을 따졌다면 앞으로는 질이라는 얘기지요. 옛날 집이라 하면 주택보급률을 따지고 한 채라도 더 지으려 눈에 불을 켰어요. 그런데 이제 주택보급률 걱정할 때가 아니잖아요. 주거 수준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저소득층 주거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문제를 주거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죠.”

한때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뉴타운, 재개발 광풍에 대해서도 그는 “개발에 대한 생각을 다시 세워야 할 시점”이라며 경계했다.

“지금까지 재개발이라는 게 기존 거주자들 싹 몰아내고 건물 번듯하게 지어 올리면 돈 있는 사람들이 와서 차지하는 거잖아요. 기존 거주자들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죠. 그런 옛날식 도시정비사업이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고 봐요. 재개발에 따른 도시 빈민이 발생하는 문제는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나 갖고 있는 문제이기도 해요. 이제 우리도 그에 대한 해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개발 방식을 수정할 때가 됐다고 봐요.”

국토 개발의 중심에 있던 그가 평생의 경험상 가장 아쉽게 여기는 부분은 정부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쉽게 바뀌어 왔다는 것. “전임 대통령이 고심 끝에 추진했던 주택정책이 다음 대통령 때 정치적 이유로 부정되고 축소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 공무원들이 소신껏 정책의 지속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강력한 대통령제 체제인 우리나라에서 공무원들이 그러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정책이 바뀌고 그에 따른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앞으로는 새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의 정책을 좀 존중했으면 좋겠어요.”

평생 공직에 있었지만 그의 인생 철학은 남다르다. ‘위험 부담을 안더라도 도전해라. 그리고 최선을 다해라. 그 과정에서 항상 더불어 산다는 생각을 가져라‘로 요약된다.

“제가 평생 공직에 있었지만 직장이 12번이나 바뀌었거든요. 그런 선택이 쉬웠겠어요? 주위에선 다들 잘 나갔다고 하는데 사실 저는 항상 불확실한 삶을 살았어요. 도전의 연속이었죠.”

그는 최근 안정된 직장, 안정된 삶에 집착하는 젊은 세대들에 대해서도 개탄을 금치 못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공무원, 교사가 제일 선호하는 직업이라던데, 과연 바람직한가 싶어요. 공무원, 교사가 나쁜 직업이라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삶에 안주하는 그런 모습이 좋게 보이지는 않아요. 도전을 해야 발전이 있는 거거든요. 공기업에 다니던 제 아들도 창업을 하겠다길래 제가 적극 찬성해서 지금 어려운 창업의 길을 가고 있어요. 창업, 참 좋지 않습니까.”

또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그의 인생론 중 핵심이다.

“무슨 일을 하든 더불어 산다고 생각하면 이뤄질 확률이 높아요. 더불어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희생입니다. 리더십도 결국 희생에서 나와요. 자기 것만 챙기면 누가 따르겠어요.”

세상에 나와 수많은 요직을 거쳤지만, 사심없이 일하고 더불어 사는데 초점을 뒀다.

“어떤 자리를 목표로 한 적은 없어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백발의 원로로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용산 개발은 언젠가는 됐어야 할 사업 같아요.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나라가 되려면 간판인 서울의 역할이 중요하거든요. 한국하면 서울이잖아요. 세종시의 경우는 지금 문제도 많고 불평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장점도 많다고 봐요. 세계적으로도 행정과 경제를 분리한 나라가 많고 잘 되고 있거든요. 미국도 워싱턴DC(행정, 정치), 뉴욕(경제)이 각각 잘 돌아가고 있잖아요. 다만 아쉬운 점은 할 수 있다면 행정 기능은 한 곳에 있어야 해요. 제대로 하려면 언젠가 청와대, 국회도 세종시로 가야되지 않겠어요. 헌재 판결이 있으니 청와대는 서울에 남아서 왔다갔다 할 수도 있겠고요.”

시골의 맑은 공기와 흙 냄새, 훈훈한 인심을 예찬하던 백발의 원로 ‘관료’가 어느새 다시 깊은 고뇌에 차 있었다.

김수한 기자/soohan@heraldcorp.com


▶홍철은 어떤 사람?

1965.3~1969.8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 학사

1970.3~1972.2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1974.9~1979.5 미 펜실베니아대 경제학 박사

1981.7~1984.3 국토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

1984.4~1991.1 청와대 경제비서관

1992.1~1993.8 건설교통부 기획관리실장

1993.9~1996.3 건설교통부 차관보

1997.1~1997.6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1997.7~1999.12 국토연구원장

2000.1~2000.7 인천발전연구원장

2000.9~2004.6 인천대학교 총장

2004.7~2011.2 대구경북연구원장

2011.3~2013.3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

2013.1~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주거복지포럼 이사장



저서

홍철의 국토개조론, 삶과 꿈(1997)

21세기 한반도 경영전략: 지경학적 접근(1998)

21세기 허브공항 전략 및 사례(2005)

리더쉽과 도시혁신(2006)

지방보통시민이 행복한 나라(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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