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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다주택자와 서민 주거안정의 역설
김경식 국토교통부 제1차관

모든 사람이 자기 집을 갖고 있으면서 자기 집에 거주하면 복잡한 주택정책 없이도 시장은 저절로 안정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가구의 둘 중 하나(45.8%)는 다른 사람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주택구입 능력이 있음에도 구입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직장ㆍ자녀ㆍ학교 등의 이유로 세 들어 사는 경우도 있지만, 주택구입 능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세 들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구조에서 작년 하반기와 같이 전ㆍ월세 가격이 크게 오르면 집 없는 설움은 더욱 커진다. 천정부지의 전셋값은 결국 서민들이 집세가 싼 지역이나 작은 집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주거의 하향 이동 등 주거의 질을 악화시킨다. 이 때문에 2년마다 전ㆍ월세 가격을 올리는 다주택자에 대한 인식이 곱지 않다. 임대차 시장 불안을 야기하거나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방해하는 사람들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전ㆍ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다주택자의 주택 구입이 절실하다. 최근 주택시장은 매매가격 안정세가 지속되고 1∼2인 가구 증가 등으로 임차수요가 늘고 있지만, 매매수요는 침체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늘어나는 임차수요에 맞추어 누군가 집을 사서 세를 줘야 집을 보유하지 못한 다수 서민들의 주거안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는 전체 주택의 5%에 불과하다.

혹자들이 다주택자가 주택을 많이 구입한다고 해서 서민주거안정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과거와 같은 높은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주택자가 자신의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전ㆍ월세 가격을 계속해서 인상한다면 전월세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다주택자의 주택구입이 양질의 민간임대주택 공급 확대로 이어져 전월세 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민간임대사업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준공공임대주택 등 임대사업자는 의무임대기간이 5년 이상(매입임대사업자 5년, 준공공임대주택 10년)으로 규정되어 있고, 연간 임대료 인상도 연 5% 이내로 제한되어 세입자가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26 대책 등을 통해 준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재산세 및 소득·법인세 감면을 확대하고, 향후 3년 내 주택을 신규 구입하여 준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할 경우 양도세를 면제하는 등 세제지원 대책을 마련하였다.

또한, 매입임대사업자금 지원 대상을 기존 미분양, 기존 주택 외에 신규 분양주택으로 확대하여 자금 마련 부담을 완화하고, 임대사업자에 대한 신규 아파트 별도 공급을 허용하여 임대주택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아울러, 준공공임대 등록요건 완화(‘13.4.1일 이전 주택 등록 허용), 의무위반 시 제재조치 완화(형벌 → 과태료), 매입임대 등록요건 완화(5년간 부도 없음 요건 삭제) 등 민간 임대사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도 완화하였다.

민간 임대사업자들은 여유자금을 활용하여 주택을 추가 구입한 다주택자다. 이들은 시장에서 주택을 구입하여 무주택 서민 등 수요자들에게 전월세주택으로 공급하고 있다. 임대사업자는 임대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주체이지만, 자발적인 경제행위를 통해 결과적으로 전월세 주택을 공급하는 공공기관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연 30만 이상씩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임대주택 공급만으로 임차수요를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다주택자에 대한 심정적인 거부감으로 무작정 제한하기 보다는 다주택자의 주택구입이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전ㆍ월세 시장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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