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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선임기자의 생생e수첩> 이젠 진도가 웁니다
얼핏 진돗개가 우는 줄로 알지 모르겠습니다만, 세월호 참사 현장으로 사고이후 지금껏 온 국민의 눈과 귀를 따갑게 한 그 진도(珍島)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현지 경제가 말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진도는 한반도 남서쪽 끝에 자리한, 행정 구역상으로 전라남도 진도군에 속하는 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3번째 큰 섬으로서 면적 334㎢이고 해안선의 길이 257.5㎞에 이릅니다. 전형적인 서해 리아스식 해안의 육지 못지않은 섬입니다.

진도로 가서 진도의 어려움을 본 것은 아닙니다. 엉뚱하게도 강릉에서였습니다. 기자는 엊그제 모처럼 연휴를 틈타 무작정 동해 쪽으로 향하다 강릉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그 곳 남대천변은 끝물이긴 했지만 ‘단오제’로 시끌벅적했습니다. 싸고 신기한 풍물들이 강변 양쪽으로 긴 장마당을 이뤄 진풍경입니다. 

강릉 단오제 풍물시장에 마련된 진주농협의 울금 홍보관.

그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끈 곳이 있습니다. 진도 농협이 마련한 ‘울금(鬱金)’ 홍보장소입니다. 강원도에서 전라도 진도라? 그 사연이 궁금했는데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진도 특산품인 울금을 재료로 만든 비누며 진통제며 몇 가지 건강재품을 공짜로 나눠준 때문입니다.

마이크를 잡은 이가 자기소개를 합니다. 진도농협 울금가공사업소 홍보사업단 소속 한성인 팀장입니다. 특유의 남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웃음도 자아내고 박수도 끌어냅니다. 24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된 진도를 하늘이 내린 보배로운 섬이라고 소개합니다. 표정이 여간 진지해 보이지 않습니다. 강릉 단오제에 출현하게 된 배경을 말하는 대목에선 숙연합니다. 이 곳 행사 주최 측에 진도 경제가 세월호 참사로 빈사상태에 빠졌다며 사정을 말 했더니 장터마당에 몇 군데 자리를 마련해 주더라는 겁니다. 격려의 환호가 터집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진도는 사면초가랍니다. 열흘 전에 팽목항을 비롯해 진도 일대 항구가 정상 가동되긴 했지만 4월16일 이후 40여 일 동안 섬의 모든 기능 올스톱 됐습니다. 슬픔과 분노가 뒤범벅이 된 초토의 땅이 된 겁니다. 현지인들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사고수습에 매달리고 슬픔을 나누려 무지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흐르면서 남모를고통 또한 컸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대놓고 불평 한마디 할 수 없었습니다. 

진도농협 울금가공사업소 홍보사업단 소속 한성인 팀장이 진도를 소개한 뒤 울금의 효능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생계입니다. 출어가 오랜 시간 전면 중단되고 일손 부족으로 농토는 물론 생산설비가 제 때 작동되지 않은 때문입니다. 뒤늦게 꽃게잡이도 풀렸지만 결과는 영 신통찮다고 합니다. 해경의 전력이 몽땅 사고현장에 투입된 데다 해경의 해체가 기정사실화하면서 삶의 터전인 황금어장을 중국어선들이 싹쓸이 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치매와 당뇨, 고혈압은 물론이고 체내에 쌓인 독소를 제거하고 막한 곳을 뚫어내는 금 같은 영험한 효능을 지녔다는 잘 나가던 울금사업팀까지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마다않고 나섰답니다. 정부로부터 80억 원을 지원받아 해마다 착실히 ‘진도산 울금화’에 성공하고 생산도 마케팅도 막 안정기에 놓일 때 졸지에 이런 낭패를 당한 그들입니다.

지금 판매가 좋아야 내년 울금 영농비를 조달한다며 홍보에 진땀을 뺍니다. 여기서 굳이 울금의 효능에 대해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인터넷에 아주 상세하게 안내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혀 강매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눈물의 호소를 하는 건 아닙니다. 내년 4월 진도의 최고 볼거리인 바닷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을 꼭 보러 와달라는 것, 그리고 오거든 부디 진도의 경제를 되살려 글자그대로 보배로운 섬으로 다시 이끌어 달라는 당부에 당부를 거듭합니다.

그리고는 원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가격에 주력 제품을 할부로 판매합니다. 가격대가 만만찮은 탓에 호응도가 그리 높지 않아 보여 줄곧 지켜보던 기자도 미력이나마 보탬을 주고자 한 계좌 결제를 했습니다. 

한 팀장의 홍보용 명함

비단 힘들어 우는 건 아름다운 섬, 진도만이 아닐 겁니다. 오뉴월, 우리경제는 혹한입니다. 지자체 축제가 줄줄이 취소되고 학생들의 장거리 체험활동이 전면 중단 된 영향이 큽니다. 이러니 관광업계는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고 연쇄반응에 요식업 등 자영업도 죽을 맛입니다. 가장 힘든 건 영세 상인들입니다.

게다가 심각한 부진의 내수를 간신히 메워 온 수출도 엉망입니다. 원화가치가 엔화 등 주변 경쟁국 통화에 비해 고공행진을 이어갑니다. 수출기업의 채산성은 위험수위를 넘나듭니다.

개각 파동에 경제팀 역시 내 코가 석자라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에야 말로 규제혁신을 통한 경제 활력회복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데 거꾸로 갑니다. 정책이 제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적극 나서줘야 하는 데 벌써부터 7.30 재·보권선거에 사활을 걸겠다는 태도입니다.

누구하나 경제난국 타개에 몸을 던지려 하지 않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경제 시동을 걸겠다고 하면 욕바가지를 뒤집어 쓸 겁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참으로 딱합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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