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집은 학교 동아리방…’ 개발이슈가 외면한 빈곤청년 131만
[헤럴드경제 = 윤현종 기자] 6.4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이 코앞이다. 각 후보들은 ‘지역발전’을 내걸고 다양한 개발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집세 부담ㆍ열악한 시설 등으로 고통받는 주거빈곤층 문제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평가다. 일례로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달 26일 이후 두 차례 후보자 방송토론에서 재개발ㆍ재건축과 용산개발 관련 의제를 최소 3차례 이상 언급했다. 그러나 주거복지 항상을 위한 특별한 로드맵은 제시하지 않았다.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시장 재임 시 설계한 주거복지책을 지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청년 등 대책 수혜층 대부분은 여전히 어려운 처지다. 수도권의 주거복지 공약도 ‘발전 청사진’에 사실상 묻혀있다.

▶ 달라진 것 없는 3년…여전한 ‘젊은이의 음지’ = 서울 관악구에 사는 지방 출신 대학생 이재민(가명ㆍ26)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3년 전 복한한 후 이사를 9번 다녔다. 그나마 서울서 주거비가 싼 편인 관악구를 줄곧 전전했다. 하지만 집세는 그에게 넘기 힘든 벽이었다. 

지방선거 각 후보들은 지역발전을 내걸고 다양한 개발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집세 부담으로 고통받는 주거빈곤층 문제엔 상대적으로 소홀했단 평가다. 대학생 이재민(가명)씨가 살았던 서울 관악구의 한 고시원(월 15만원) 인근. 그는 한 달을 겨우 살고 이곳을 나와 학교에서 두 달 간 숙식을 해결했다.

2011년 겨울, 정원이 부족한 기숙사에서 밀려난 그가 스스로 마련한 첫 보금자리는 전용 3㎡가량, 월 14만원인 고시원이었다. 공용화장실에선 온수가 안 나왔다. 인터넷도 쓸 수 없었다. 한 달 후 이사한 월 15만원짜리 고시원은 남녀 구분없는 방 40여개에 남녀공용 욕실이 1개였다.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였다. 갈 곳이 없었던 이씨는 학교 동아리실에서 두 달 간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간신히 과외를 구해 지금은 서원동의 보증금200만ㆍ월 30만원짜리 옥탑방(전용 12㎡)으로 ‘입성’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최저주거면적(14㎡)에 못 미치는 주거빈곤 상태다.

주 5일 법정 최저시급(5210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2년째 학비를 충당 중인 대학생 김 모(23)씨도 주거빈곤층이다. 그는 월 23만원씩 드는 종로의 고시원 방세가 부담돼 최근 마포구 대흥동 소재 19만원짜리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화재 등 안전대비가 허술한 곳이었다. 형편이 안 좋은 고향 가족(전북에 거주)은 김씨를 돕지 못한다. 그는 “주거비 비중이 월 수입 30%이상”이라며 “원룸 이사는 꿈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살던 고시원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그는 “혼자 이불 등 이삿짐을 싸들고 이 길을 지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털어놨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2010년 기준)에 따르면 최저주거 미달면적 혹은 지하ㆍ옥탑에 사는 이들은 전국 579만514명이다. 이 중 20∼34세 청년은 131만 9442명이다. 37.4%(49만4000여명)는 서울에 집중됐다.

특히 이씨는 군 입대시기를 빼면 5년째 서울서 살지만, 서울 주거복지정책 바깥에 머물러 있다. 전입신고가 불가능한 ‘시민’이라서다. 형편이 어려운 가족은 사정상 고향(전남 광주)의 국민임대주택을 이씨 명의로 신청해 살고 있다.

생활권이 서울이지만 ‘혜택’을 못 받는 건 올 초 대학 졸업 후 취업준비 중인 박희진(가명ㆍ27ㆍ여)씨도 마찬가지다. 그의 가족(3명)은 작년 여름 주거비가 부담돼 서울을 떴다. 박씨는 현재 서울 친구 집에 얹혀살며 공부 중이다. 그는 “(친구에게) 방세를 월 10만원씩 주고 있다”며 “시설이 열악한 고시원은 엄두가 안 났다. 공공임대 입주자격도 안 돼 최소 2~3년은 이렇게 지낼 것 같다”고 털어놨다.

‘잠만 자는 방’ 등 벽보가 어지러이 붙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전봇대

전입신고를 한 청년 외에 이씨나 박씨같은 ‘이방인’을 합쳐보자. 전문가들은 집세를 감당할 빚 조차 내기 힘든 서울ㆍ수도권 주거빈곤청년은 50만명을 상회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 파편화 한 공약, 현실감도 제로… = 그러나 청년주거문제를 대비해 주류 정치권이 낸 선거공약은 특별한 게 없다는 지적이다.

변창흠 한국도시연구소장(세종대 행정학과 교수)은 “지방선거 후보들이 주거빈곤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공약은 거의 없었다”고 평했다. 변 소장은 “저소득 청년층은 급여 절반을 주거비로 쓰고 있지만, (정치권은) 그 심각성을 인식치 못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과거와 달리 부모들은 자녀주거비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며 “청년 대부분이 주거비 부담을 이기지 못해 사회 초년생부터 사실상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청년층 주거밀집지 중 하나인 서울 마포구 대흥동 일대

그나마 새누리당이 지난 4월 발표한 ‘20∼30대 채무자 주택마련 시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연장’ 공약 등은 현실감마저 떨어진다는 게 청년유권자 및 청년주거 관련단체들의 반응이다.

7년 전 빌린 학자금대출과 신용대출 등을 합쳐 소득 절반이상을 빚 갚는데 쓰고 있는 회사원 김 모(33)씨는 “빚 내는 걸 편의점에서 물건 사듯 생각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이 의심스럽다”고 개탄했다.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세입자네트워크 팀장은 “결국 빚을 더 내 살 곳을 마련하란 미봉책”이라며 “하락하는 집값을 떠받치려 20∼30대가 이용당하고 있단 의구심마저 든다”고 비판했다.

김종하 서울대 총학생회 주거자문국장도 “세입자 권리보호 공약은 아파트 세입자에만 초점을 맞춘 게 대부분”이라며 “다가구ㆍ오피스텔 등 다양한 주거형태의 세입자들은 배제돼 있다”고 꼬집었다.

대학생 김 모씨가 살고있는 고시원 내부. 김씨는 최근 다른 고시원에서 이곳으로 이사오며 월세를 23만원에서 19만원으로 낮췄다.

▶ 스스로 준비한다 = 청년들은 세입자가 절대다수인 청년층의 목소리를 내고자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최근 대학생주거권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가 착수한 ‘불량원룸’ 조사가 대표적이다. 네트워크 관계자는 “(대학생을 포함한)청년 세입자 대부분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시설개선 등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당하고 있다”며 “올 가을까지 서울 주요 원룸밀집지의 시설상태를 집계한 ‘블랙리스트’를 완성하고, 이를 지속 업데이트해 청년 세입자 권익 향상을 도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정책의제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소득ㆍ연령ㆍ세대원(가족) 수 등으로 자격제한을 둔 현행 공공임대 공급시스템 개선도 요구하고 있다. 올 초 한국도시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전국 공공임대주택 95만여 가구 중 20~34세 입주 비중은 11만6157가구로 12.2%가량 된다. 연령별 입주비중이 가장 적다. 특히 청년 인구가 밀집한 서울의 경우 공공임대 16만8000가구에 사는 청년층은 8375가구로 5%정도다. 


권지웅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은 “현행법 및 지자체 조례 상 신혼부부와 장애인청년 등만 가능한 공공임대 입주자격에 ‘1인청년’ 등을 넣어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등을 조금이나마 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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