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인(寅)에 생겨났다. 그런 까닭에 인황씨 때에는 같은 성을 가진 아홉 사람이 아홉 구역에 나뉘어 살았다. 이들이 인류 탄생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지금으로부터 2만7200년 전 무렵)
태서의 학자들은 인류가 처음에는 원숭이 무리와 같은 열등동물이었다고 한다. 또 여러 인종들이 애초에는 모두 하나의 종족이었다고 하는데, 어떤 이는 세계의 인종들이 각기 달랐다고도 말한다.”
동양의 것과 대비해서 서구의 진화론을 설명한 대목이 재미있다. 그런가 하면 국이나 찌개류와 비슷한 ‘전골’이나 ‘복날의 개장국’같은 서민 생활에 친숙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졌다.
“전골은 언제 기원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옛날 군중에서 군사가 머리에 쓰고 있던 전립 철판을 이용하여 고기를 삶아 먹었던 까닭에, 후세에 전립 모양의 솥을 만들어서 채소는 속에 넣고 고기는 가장자리에 놓고서 익혀서 먹는 것을 ‘전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토정 이지함이 철판에다 고기를 익혀 먹던 데서 그 방법이 비롯됐다고도 한다.〔…〕”
“‘사기’에 ‘진나라 덕공 2년에 처음으로 복사(伏祠)를 지냈는데, 사대문에서 개를 죽여 충재를 막았다’고 했다(지금으로부터 2685년전). 복날 개를 잡는 일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복날에 개고기를 파의 밑동과 함께 푹 삶는데, 닭고기와 죽순, 고춧가루를 넣어서 국을 끓이면 맛이 매우 좋아진다. 이를 일러 ‘개장국’이라고 한다.”
을사조약을 규탄하는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잘 알려진 대한제국기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언론인, 저술가였던 장지연이 쓴 백과사전 ‘만국사물기원역사’의 일부다. 1909년 황성신문사에서 간행한 이 책이 한국 고전문학자 황재문 교수(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풀이를 거쳐 새롭게 출간(한겨레출판)됐다. 원래 국한문 혼용체로 기술돼 있는 것을 현재 사용되는 국문으로 풀이했고,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으면서 풍부한 주석을 덧붙였다.
동서양의 여러 사물들에 대한 기원과 역사를 백과사전 형식으로 기술한 ‘만국사물기원역사’는 천문, 지리, 인류, 문사, 과학, 교육, 종교, 예절, 의장, 정치, 군사, 위생, 공예, 역체, 상업, 농사, 직조물, 복식, 음식, 건축, 음악, 기계, 기용, 유희, 방술, 식물, 광물, 풍속잡제등 28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장에 서술된 항목을 합하면 모두 498개이다. ‘인류의 탄생’ 항목에서 진화론을 소개한 것처럼각 내용에 한국,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서양의 지식까지 간결하게 정리된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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