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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재곤의 스포츠 오딧세이> 시대의 과녁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호(號)는 일견 항해를 접고 멈춰있는 상태로, 긴 침묵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유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경제성장을 해왔다. 세계 무역 시장 점유율이 9위를 차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일정부분의 희생은 불가피한 점이 있다. 대가족제도하에서 구성원들의 양보와 희생은 미덕이었다. 공동체의 삶을 가르는 방식도 일방통행이 주를 이뤘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을 조직사회는 원했고, 그를 능력자로 평가했다. 정당함과 부당함 사이의 고뇌의 깊이보다 목표달성을 위해 편법은 필요악으로 치부됐다.

그렇게 통용되고 무마됐던 문제점들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봇물처럼 터지고 말았다. 일각만을 노출했던 빙산이 마침내 거대한 전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희생자를 구할 일기일회(一期一會)의 기회를 놓친 참담함은, 시간이 갈수록 두드러졌다. 그 순간 능력자보다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강한 이가 절실했었다.

국민들은 반성하고 오열했다. 일상의 동선을 최소화하면서 희생자 유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 의사자의 선택과 선원들의 용서받지 못할 선택 사이에서 내 자신의 남은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이 주어졌다. 또한 조심스럽게 해결책을 가늠케 했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유가족들의 절규는 지극히 간단했다. ‘희생자들을 기억해 달라.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 달라. 한명의 실종자 유실도 없도록 끝까지 수색해 달라.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들이 앞으로도 잘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미안해 하지마라.’ 더 무엇이 있겠는가. 너무도 단순하고 명약관화한 사실을 이해하는 데 정부는 참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생명을 구할 그 귀한 시기에 말이다.

유가족은 물론이거니와 국민들도 이제 위로와 희망이 절실한 시점이 됐다. 시대의 과녁에 ‘용서와 화해’라는 글자를 새길 분들은 오직 희생자와 그 가족뿐일 것이다. 우리가 이 땅을 버리지 않는 한 지금의 대한민국은 우리의 영원한 조국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얄궂은 운명처럼 6월의 브라질월드컵이 눈 앞에 다가왔다. 즐거움보다 무거움이 앞선다. 우리는 아닐지라도 세계인 관심은 엄연히 월드컵에 쏠려 있다. 국가 간의 경쟁과 국격을 가늠할 격전장이다. 지금 그 누구라고 앞장서 ‘진군 앞으로’를 외칠 수 있을까 싶지만, 더 깊이 그 정적(靜的) 속의 고요에 귀를 기울이면 ‘다시 일어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울림이 서려있을지 모른다. 희생자들도 저 멀리서나마 지켜봐 줄 것이다.

홍명보호에 승선한 선수들은 파주훈련장에 입성하면서 노란리본을 가슴에 달고 들어왔다. 세월호의 참사를 보는 시각도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국가대표라는 명예와 책임과 지위는 외국에 나갔을 때 더 영롱히 자신을 비추는 법이다. 이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설 희망의 메신저 역할을 기대한다. 시기적으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 성적보다 멋진 시합을 펼쳐 한국인의 자긍심을 다시금 세워주기를 바란다.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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