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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터랩] 금융권 ‘人災’ 뿌리 뽑아야
<1> 화려함 이면에 어두운 단면이…①간과했던 관행, 禍를 키우다
합병회사간 파벌싸움 만연
내부통제 시스템 실행 안돼

사기대출 등 잇단 대형사고
‘금융 후진국’ 속살 드러나



최근 우리나라 금융업은 한국 근대금융 100년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고 나면 사고가 터진다’고 할 정도로 도미노 사고에 홍역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는 금융 후진국의 ‘속살’이 이제서야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 금융업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 토네이도급 외풍(外風)에도 비교적 잘 견뎌왔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어느 금융사 할 것 없이 비리ㆍ횡령ㆍ부당대출ㆍ정보유출 등 갖가지 사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금융업의 뿌리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 후진국 ‘속살’ 드러나=지난해 9월 동양증권 기업어음(CP) 불완전판매 피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11월 KB국민은행에서 내부횡령 사고가 터졌다. 올 들어서는 카드사에서 대규모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초대형 사고가 발생하면서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2월에는 하나은행 등 일부 은행이 KT ENS 협력업체의 대형 사기대출 사건에 휘말리면서 대출심사의 허술함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일본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의 비리도 연달아 터졌다. 특히 도쿄지점 문제는 지난해 11월 국민은행에서 시작돼 우리은행, IBK기업은행에 이어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까지 확산됐다.

최근 들어선 금융사 직원이 가담한 사고의 규모가 점점 대형화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터진 국민은행 횡령 사건은 직원이 국민주택채권의 원리금 110여억원을 횡령한 사건이다. 올 4월엔 팀장급 직원이 부동산개발업자에게 1조원 가까운 규모의 허위 입금증을 발급해준 사건 등이 발생했다.

최근엔 한화생명에서 내부 직원이 30억원대 대출의 허위보증을 선 사건이 적발되기도 했다. 5월엔 삼성카드에서 스마트폰 앱카드를 이용한 명의도용 사고까지 터졌다.

한 금융사 임원은 “수십년 금융권에 몸담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형 사고가 연이어 터진 적은 없었다”며 “국민들이 점점 돈 맡길 곳이 없다고 할까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한지붕 두가족, 줄대기 경쟁이 화근=특히 이들 사고의 진앙지가 대부분 내부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조직 안에서 잘못된 내부 관행이 곪아 최근의 사고들로 터져나온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사고의 원인을 관리 시스템의 부재라기보다 조직의 태생적 한계점에서 찾고 있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여러 금융사가 한데 모인 ‘합병 회사’가 많아지다 보니 조직 내부의 화학적 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파벌 싸움이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이는 결국 원칙에 따른 인사보다 줄대기 경쟁을 부추겨 화근이 됐다는 지적이다.

김호중 건국대(경영학) 교수는 “내부통제는 최상부가 아닌 중하부에서 하는 것인데, 사고가 터진 은행들의 수장은 낙하산인 경우가 많아 직원들이 줄대기에 바쁜 상황”이라며 “내부통제 시스템 자체는 잘 갖춰졌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이 실제로 시행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人(사람)이 因(원인)=경기침체 장기화와 국내 금융사들의 지배구조 문제도 사고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구조조정에 대한 위협과 실적 압박에 내몰린 금융사 직원들이 윤리를 망각하고 극단적 한탕주의에 빠져들 개연성이 크다는 뜻이다. 금융업 종사자에게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다른 산업보다 거부감이 큰 것은 당연하다.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권의 구조조정 압력이 강해지면 미래가 불안해진 직원들이 유혹에 빠져들 수 있다”며 “회사 측이 내부통제를 강화하더라도 누군가가 ‘한번 해 먹겠다’고 마음먹으면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낙하산 인사와 관치(官治)금융, 노조와 경영진 간 오랜 갈등으로 조직 구성원들의 패배감이 누적되고 비리에 둔감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금융사고는 결국 시스템보다 사람의 문제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내부통제는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이 결정짓는 일”이라며 “내부 제보 제도를 더 활성화하는 동시에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확고하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경원 기자/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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