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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박승윤> 이제 ‘빨리 빨리’ 에서 벗어나자
해외에서 수년간 근무하다가 귀국한 주변 사람들이 초기에 제일 많이 하는 하소연은 시내 운전이다. 앞 차와의 사이에 조금만 틈이 생기면 차 머리를 들이밀고 끼어들려 해서 움찔 놀란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태어나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도 해외에서 몇 년간 생활하다 복귀하면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는 ‘빨리 빨리’ 문화에 정신줄을 놓는다.

사실 ‘빨리 빨리’ 문화는 동족상잔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60여년 만에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원동력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도로나 다리, 공장을 건설할 때 공사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최고의 경쟁력이었다. 하루 한 끼를 챙겨 먹는 것이 호사였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밤새워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빨리 빨리’가 가져다 준 자본주의의 성취에 함몰돼 어느 순간 우리 사회는 여유와 절제, 공동체 의식을 잃어버린 듯 하다. ‘잘 살아보세’로 경제 기적을 일궈내고 국민의 힘으로 정치적 민주화까지 쟁취했지만, 현재의 한국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형국이다. 조선시대 ‘선비 정신’이나 국문학자 조윤제 선생이 한국인의 특질로 꼽은 ‘은근과 끈기’ 같은 고유의 DNA는 약화되고, 새로운 사회적 자본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재벌ㆍ대기업 노조ㆍ전문직 등 힘 있는 자들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상생, 경제 민주화, 복지를 강화하는 사회자본주의 등이 제시되기는 했다. 하지만 정략적 이해에 따라 추진 방향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국민들은 오히려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문제에서 비롯된 국가 개조가 화두로 떠올랐다. 안전 대책 외에 공무원-민간업계 유착이 드러나면서 관료 개혁까지 과제로 등장했다. 그런데 안전 시스템이나 관피아 개혁은 규제 완화나 공기업 개혁과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투자 완화등 한 방향만 바라보는 규제 완화, 효율성만을 따지는 공기업 개혁은 전혀 예상치못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음을 세월호 참사는 일깨워준다. 전 정부에서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선박의 노후 연령을 늘려준 것이 이번 사고의 원인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지않나.

더 걱정되는 것은 ‘빨리 빨리’ 문화에 따라다니는 그림자인 ‘냄비’ 근성이다. 사고가 터지면 확 달아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행태이다. 우리는 과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인명 사고는 물론이고 카드 사태, 우면산 산사태 같은 경제ㆍ재난 사고가 날 때마다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즉각적인 규제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깊숙히 원인을 진단하고 재발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대책을 끈기있게 추진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도 그 업보다.

이번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사회의 병폐를 근원까지 파헤치고 국가 운영시스템을 매의 눈으로 조망해 방향타를 제대로 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조급함과 냄비 근성을 벗어 던지고 인간에 대한 신뢰와 배려,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가 나서기보다 민간 주도의 시민 운동이 바람직하다. 노란 리본이 촉매 역할을 할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박승윤 산업부장 /parks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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