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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워냄으로써 더 또렷이 드러나는 미감…김태호의 ‘내재율’연작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추상화가 김태호(홍익대 미대 교수)의 회화는 말이 없다. 차분한 가운데 묵직함을 뿜어낸다.

캔버스에 격자의 선을 긋고, 스무번이 넘게 물감의 쌓아올림과 깎아내기를 거듭한 끝에 탄생한 화면에선 언뜻언뜻 깊은 울림이 들린다. 벌집같은 작은 방 하나하나는 밤하늘을 찬란히 수놓는 작은 별들처럼, 은하수처럼 저마다 오묘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1980년대 이래 ‘내재율(Internal Rhythm)‘이란 타이틀로 작업해온 김태호 교수가 5월 14일부터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최근 2~3년간 제작한 100호 이상의 대작을 출품한다. 

김태호 Internal Rhythm 2013-19, 163x131cm, Acrylic on canvas, 2013 [사진제공=노화랑]

김태호는 색색의 아크릴물감을 스무 겹이상 쌓아올린 뒤, 마치 구도자가 수행을 하듯 그 표면을 끌칼로 끝없이 깎아낸다. 긁어내기를 거듭할 때마다 색색의 층들은 내부의 미묘한 빛깔을 살짝살짝 드러내며, 끝없는 리듬감을 선사한다.

이렇듯 그의 작업은 쌓았던 안료를 지움으로써 미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역설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무수하게 색 층을 쌓아올리는 일도, 그 수고를 다시 깎아내는 작업도 보기에 따라선 허무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겹겹이 쌓아올린 물감층은 육중한 무게와 시각적 압도감을 주지만, 그 물감층을 끌칼이 지나가면서 깎은 결과 내비치는 색층의 리듬은 더욱 깊은 생명력과 울림을 드러내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는 안료를 중첩시키고, 격자의 중심에 벌집과 같은 작은 방을 만드는 고된 여정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 작고, 제각기 다른 형태의 방들을 새로운 생명을 품는 소우주로 만들기 위해서다. 김태호는 최근들어 색층이 쌓이는 격자를 좀 더 농밀하게, 더욱 단단하게 표현하고 있다. 

김태호 Internal Rhythm 2013-31, 163x131cm, Acrylic on canvas, 2013 [사진제공=노화랑]

김태호의 작업은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거듭한 끝에 탄생됐다. 그 결과 그의 회화는 평면작품이라기 보다는 입체조각에 더 가까운 느낌을 선사한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뮤지엄 산 관장)씨는 “김태호의 작품은 시각적 회화의 차원을 넘어선 현상을 예시한다. 많은 색채가 쌓아올려졌다가 깎아낸 물감층은 마치 생명의 숨결처럼 미묘한 리듬으로 작용한다. 견고한 바깥의 구조에 대비되게 섬세한 내부의 리듬은 신비로운 생성의 차원을 일궈낸다”고 평했다.

김태호 Internal Rhythm 2014-2, 73x61.5cm, acrylic on canvas, 2014 [사진제공=노화랑]

작가 김태호는 1971년 한국판화전 금상을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어 제22회 국전 문화공보부 장관상(1973), 한국미술대상전 특별상(1976), 동아국제판화 비엔날레 대상(1986) 등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영국의 대영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전시는 5월 27일까지. (02)732-3558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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