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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 재질 드레스 · 뿌리살린 부케…자연도 즐거웠던 결혼식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친환경 결혼식’. 아직은 생소한 단어다. 미혼인 기자도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잉? 결혼식과 친환경이 무슨 상관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혼식의 화려함이 더할 수록 환경 오염의 우려도 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다소 생각이 달라진다.

친환경 사회적기업 ‘대지를위한바느질’에 따르면 한 해 평균 4억2500만 송이의 꽃이 결혼식 장식용으로 30분 정도 쓰인 후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6800만㎏, 탄소발생량도 483만t에 달한다. 화려한 결혼식의 뒷면엔 환경 오염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이 대중화 되면서 ‘자연도 함께 즐거운 결혼식을 만들자’는 예비 부부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가수 이효리씨 등 일부 유명인들이 친환경결혼식을 진행하면서 최근 더욱 대중화됐다. 하지만 관심이 있어도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본지는 실제 친환경 결혼식을 진행한 2명의 신부를 직접 만나 생생한 후기를 들어봤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두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소박함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리고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였다. 

지난 해 11월 결혼한 황영지(29) 신부의 친환경결혼식 모습. 버진로드를 꽃장식 대신 계절 식물 화분 등으로 대신했다. [사진제공=황영지 씨]

▶ “자연도 함께 즐거웠던 결혼식…종이로 만든 드레스, 뿌리를 살려둔 부케까지”= 회사원 황영지(29ㆍ여)씨는 지난 해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여느 예비 신부처럼 결혼 준비를 위해 ‘폭풍 검색’을 하던 중 그녀는 ‘친환경결혼식’의 존재를 알게 됐다. 학창시절부터 환경 문제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고, 또 ‘틀에 박힌 결혼식은 하지 않겠다’는 포부가 더해지면서 황 씨는 고민 없이 친환경결혼식을 선택하게 됐다.

황 씨는 친환경드레스를 제작하는 사회적기업 ‘대지를 위한 바느질’에서 드레스를 구입했다. 웨딩드레스는 전문 업체에서 대여하고 예복을 따로 구매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황 씨는 드레스 겸 예복으로 활용 가능한 드레스를 구매했다.

그녀의 드레스는 화학적 공정을 거치지 않은 옥수수 전분, 천연 한지섬유, 천연 쐐기풀 섬유 등 자연에서 뽑아낸 섬유로 제작됐다. 대부분 웨딩드레스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표백, 형광처리 공정을 거치지만 친환경드레스는 별도의 공정이 없다. 일반 드레스에 비해 미색 빛이 감도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화학적 공정을 거치지 않은 옥수수 전분, 천연 한지섬유, 천연 쐐기풀 섬유 등 자연에서 뽑아낸 섬유를 사용한 친환경 드레스. [사진=대지를위한바느질]

신부의 부케와 신랑의 부토니아도 남달랐다. 대부분 꽃의 뿌리를 잘라내고 포장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황 씨 부부는 꽃의 뿌리를 그대로 살려뒀다. 줄기와 잎에 수분을 저장하고 있는 다육식물을 사용해 결혼식이 끝난 후 화분에 옮겨 심어 키울 수 있도록 했다.

버진로드를 장식한 꽃장식도 마찬가지였다. 계절 꽃과 허브를화분에 심어 장식을 했다. 절화(切花)를 하지 않아 원예 폐기물을 줄일 수 있었고 화분은 하객 답례품으로 활용했다. 재생용지에 콩기름으로 인쇄한 친환경 청첩장도 하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황 씨는 본인의 결혼식을 두고 “우리 부부와 가족, 그리고 자연도 함께 즐거웠던 결혼식”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일반 결혼식에 비해 화려함은 덜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결혼식은 낭비하지 않는 결혼식이어서 좋았다. 자연에 죄를 짓지 않는 기분이었다” 라고 말했다. 

 
뿌리를 그대로 살려둔 부토니아의 모습. 다량의 수분을 머금고 있는 다육식물을 사용해 결혼식이 끝난 후 화분에 옮겨 심어 키울 수 있다. [사진=대지를위한바느질]

하객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그는 “ ‘젊은 사람들이 의식이 있다’ ‘소박한 멋이 있었다’며 하객분들이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특히 화분은 하객들이 서로 가져가려고할 만큼 인기가 좋았다”라며 “결혼을 앞둔 친구들에게도 제가 준비했던 과정을 알려주면서 적극 추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 “3개월 간 파스타만 먹어야 했지만 재활용 병 사용해 낭비 줄였죠”=지난 4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결혼한 홍성희(30ㆍ여)씨는 결혼식의 ‘A부터 Z까지’ 손수 준비했다. 처음 시작은 ‘내 결혼식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겠다’는 취지였지만 결혼식을 끝내고 보니 낭비를 최소화하고 환경 오염을 줄인 말그대로 ‘친환경 결혼식’이었다.

홍 씨는 결혼식장 내 하객용 테이블 중간에 꽃장식 대신 유리병 안에 조약돌과 작은 양초를 넣은 작은 조명을 만들어 올렸다. “꽃은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게 아까워서 고민하다가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조약돌과 양초, 병은 두고 두고 사용할 수 있으니 훨씬 더 경제적었다.”

유리병 준비 과정은 더욱 놀랍다. 결혼식용으로 쓰이는 유리병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에 대형마트에서 파스타소스가 담긴 병 30개를 구입했다. 가격은 절반 수준이었다. 3개월 동안 파스타를 “질리도록” 먹어야했지만 비용도 절감하고 재활용 병 사용으로 낭비도 줄일 수 있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병을 화분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뿌리를 그대로 살려둔 부케를 신부가 들고 있다. 다량의 수분을 머금고 있는 다육식물을 사용해 결혼식이 끝난 후 화분에 옮겨 심어 키울 수 있다. [사진=대지를위한바느질]

청첩장도 직접 만들었다. 건축을 전공한 남편과 디자인을 전공한 홍 씨의 재능이 더해졌다. 신랑이 포토샵을 활용해 건축도면을 그리듯 청첩장을 디자인해 캔버스지에 인쇄를 했다. 여기에 벌랩(burlapㆍ올이 굵은 삼베)천을 덧대어 멋스러운 청첩장을 완성했다. 청첩장 제작 기간만 두달이 걸렸다.

홍 씨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짬을 내 청첩장을 만들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한번 보고 버리는 청첩장에 우리의 소중한 기록을 담고 싶진 않았다. 또 부부의 재능을 담은 만큼 하객들에게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친환경결혼식이 꼭 환경 보호라는 거창한 의미에서 시작해야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홍 씨는 “사실 우리도 ‘직접 준비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준비 과정에서 다양한 고민을 하다보니 친환경적인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라며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환경에 대한 대단한 의식이 없어도 친환경결혼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결혼식, 공공기관ㆍ야외에서만 할 수 있다(?)= 친환경결혼식에 관심이 생겼다면 선택 전 몇 가지 염두에 둘 만한 내용들이 있다.

우선 일반 웨딩홀이나 호텔 등에서 결혼식을 할 경우 친환경식으로 진행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다수 웨딩홀은 공간 대여 비용과 꽃장식 비용 등이 연결된 경우가 많다. 연결된 업체를 이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행할 경우 공간 대여 비용이 비싸질 수 있다. 친환경결혼식이 주로 공공기관이나 종교시설, 야외 등에서 이뤄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야외에서 진행한 친환경결혼식의 모습. 불필요한 꽃장식을 줄이고 소박한 결혼식으로 진행했다. 전기발생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야외결혼식을 선택하는 예비 부부들도 늘고 있다. [사진제공=대지를위한바느질]

황 씨는 “구민회관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만족스러웠다. 친환경결혼식이 가능한 장소를 일부러 찾았다. 또 꼭 웨딩홀이 아니더라도 공공성을 지닌 공간에서 결혼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친환경결혼식을 진행하는 비용도 일반 결혼식과 큰 차이가 없다. 막연히 ‘비용이 훨씬 저렴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과 다르다. 결혼식 방식과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 결혼식과 비슷한 수준의 비용에 환경 보호의 가치가 더해진다고 보는 게 정확한 해석이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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