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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가본 슈퍼리치들의 미술관上…부자들의 착한 집, 예쁜 짓
< 전세계 슈퍼리치 컬렉터들은 미술품을 감상하고, 수집하는 일에도 열심이지만 수집품을 대중과 나누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대다수 파워 컬렉터들은 자신이 평생에 걸쳐 모은 작품을 국공립 미술관에 기증하거나, 사립미술관을 건립해 일반 대중과 함께 향유한다. 게다가 미술관 운영자금, 학술연구기금까지 쾌척해 ‘지속가능한 미술관’이 되도록 한다. 건물만 덩그랗게 지어놓고, 운영예산이 없어 미술관이 부실화될 수 있는 소지를 막기 위한 매우 중요한 조치다. 국내에도 미술관 간판을 단 곳은 많지만 제대로 된 사립미술관이 드문 상황에서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하고, 전시기획자이자 미술정책 전문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정준모 씨가 자신이 둘러본 세계 각국의 슈퍼리치 미술관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월마트 상속녀 앨리스 왈튼이 아칸소에 지은 Crystal_Bridges_Museum_of_American_Art 실내 전경 [사진=필자 제공]

재산 1억달러 이상의 슈퍼리치들의 미술사랑, 문화사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은 경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최대 규모의 베팅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의 미술품에 대한 과(?)한 사랑은 ‘마땅히 투자할만한 곳을 찾지못한 유동자금의 유입’이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은 그들의 미술에 대한 원초적 사랑 때문이다.

문화란 발전을 위해서 소비와 후원이 꼭 필요하다. 예전에는 성직자나 제왕, 귀족들이 그 역할을 했다. 한 때는 정부가 주도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과 육성은 부자들의 몫이 되었다. 이를 인식한 수많은 슈퍼리치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 차원에서 문화에 많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바쳤듯이 오늘날에는 ‘착한 집’, 즉 미술관을 지어 사회에 헌정하는 것으로 자신의 또다른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 

월마트 상속녀 앨리스 왈튼이 아칸소에 지은 Crystal_Bridges_Museum_of_American_Art . 모쉐 샤프디가 설계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착한 집의 역사가 절대적이다. 거개의 미술관이 주정부나 도시의 이름이 붙어있지만 이런 미술관들도 대부분 기부로 이뤄진 재단 소유이다.

뉴욕을 여행하는 이들이 너나없이 들르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경우 대공황이 시작되던 1929년 문을 열었다. 남편 몰래 미술품을 수집했던 부호들의 아내들은 유럽미술에 밝았던 화가 아서 데이비스의 설득에 오늘의 모마를 개관했다. 여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석유왕’ 존 록펠러 2세(J. D. Rockefeller, 1874~1960)의 부인인 애비(Abby Rockefeller,1874∼1948)다. 록펠러 가는 미술관 건립을 위해 맨해튼 최고의 중심지인 53번가 부지를 제공했다. 그래서 미술관이 록펠러 타운에 존재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 옆에 있는 민속미술관을 인수해 4번째 확장공사를 계획하고 있다.

뉴욕의 또다른 현대미술관인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은 가장 미국적인 미술을 수용하는 미술관으로 재원의 대부분을 필립 모리스에서 지원한다. 미국 현대미술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거트루드 밴더필드 휘트니 여사의 700여점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한 미술관이다. 

부동산 재벌이자 파워 컬렉터인 엘리 브로드가 건립 중인 미술관의 스케치. LA에 들어설 예정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자리한 워싱턴 국립미술관, 즉 내셔날 갤러리는 1937년부터 준비를 시작해 1941년 개관했다. 국립이라고 하지만 실은 재무부 장관과 주영대사를 역임한 실업가이자 미술수집가인 A.W.멜런(Mellon,1855∼1937)이 건물과 미술품 그리고 운영자금까지 국가에 기증해서 설립된 미술관이다.

뉴욕 한복판의 저택을 미술관으로 사용하는 프릭컬레션(The Frick Collection)은 1935년 시민들의 품에 안겨졌다. 철강업으로 부를 축적한 헨리 클레이 프릭이 평생을 모은 빛나는 미술사의 한 부분과 함께 말이다.

미국 서부 로스엔젤리스의 말리부 해변을 내려다보며 서있는 게티센터(Getty Center)는 미술인들의 꿈의 궁전이자 미국 서부인들의 자부심이다. 언덕 위에 리차드 마이어(1935~ )의 설계로 우뚝 솟은 유백색의 건물군은 ‘21세기 문화의 아크로폴리스’이다. 석유부자였던 폴 게티(J. Paul Getty, 1893~1976)가 1953년 게티 미술관은 연 후 1982년 미술관 확장계획을 설립하고 1984년부터 1997년까지 13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세계 최고 부자미술관으로 게티가 사업을 하면서 저질렀던 모든 악행이 묻히는 공간이다. 개(?) 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 결과일 것이다. 

현대 드로잉 컬렉션으로 유명한 Judith Rothschild Foundation 미술관의 전시장 내부.

L.A에는 게티 센터보다 작지만 알찬 미술관이 있다. 바로 노턴 사이먼 미술관(Norton Simon Museum)이다. 파사데나에 위치한 미술관은 게티 미술관과 함께 L.A.의 대표적인 미술관이다. 기존의 미술관이 폐관 위기에 처하자 사업가 노턴 사이먼(Norton Simon, 1907~93) 이 인수, 기존의 소장품에 그가 30년이상 수집한 미술품을 함께 전시한다. 노턴 사이먼은 포틀랜드 출신으로 헌트-웻슨 식품, 맥칼 출판사, 토요리뷰, 캐나다 드라이, 맥스 팩토 화장품, 아비스 자동차 렌트회사 등을 경영했다.

이런 미국 미술관의 역사와 전통은 오늘에도 여전하다. 화장품업을 하는 에스티 로더 창업자의 아들인 로널드 S 로더(Ronald S. Lauder, 1944~ )는 2001년 뉴욕 5번가에 노이에갤러리(Neue Galerie)를 개관했다. 유서깊은 건물을 미술관으로 조성한 것. 구스타프 클림트와 뭉크, 비엔나분리파, 아르누보 풍의 소장품을 주로 전시하는데 ‘우아’함이 넘쳐난다.

아트 컬렉터 피터 브란트(Peter M. Brant, 1947~ )는 2009년 5월 코네티컷 그린위치에 브란트 재단(The Brant Foundation Art Study Center)을 개관해 자신의 소장품을 공개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친구이자 신문용지를 생산해서 부호의 반열에 오른 그의 워홀컬렉션은 유명하다. 제프 쿤스, 슈나벨 등과 친구처럼 어울리면서 화가들의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제작자로 바스키야(1996), 폴락(2000), 그리고 2006년에는 워홀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피터 브란트가 세운 The Brant Foundation Art Study Center. 제프 쿤스의 강아지 조각이 들어서 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인덱스에 13번째로 랭크된 월마트(Wal-Mart)의 상속녀 앨리스 왈튼(Alice Walton,1949~ )은 지난 2011년 11월 아칸소에 미술관을 만들었다. 모쉐 샤프디(Moshe Safdie,1938~ )가 설계한 미술관의 명칭은 크리스탈 브릿지 미술관(Crystal Bridges Museum of American Art)이다. 연못을 가운데 두고 두개의 건물이 마주 보듯 서 있는 이 미술관 건립을 위해 재단은 미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존 빌메르딩(John Wilmerding, 1938~ )을 고용해서 미술관을 준비했다.

1974년 이후 건립된 미술관 중 유일하게 2억달러(2160억원)의 재단기금을 지닌 미술관이다. 미국의 식민지시대미술부터 19세기미술, 근대와 현대로 구분해서 소장하고 전시를 한다.

미국의 부동산 재벌로 리투아니아계 유대인인 엘리 브로드(Eli Broad, 1933~ )는 1973년 이래 수집해온 소장품을 가지고 LA에 미술관 건립을 계획 중이다. 이에 지역 간에 서로 미술관을 유치하고자 엄청난 각축전이 벌어졌다. 그간 MoCA와 LA 카운티미술관(LACMA) 등을 엄청나게 후원해 온 그는 1984년 브로드 아트화운데이션을 설립하고, 자신의 소장품을 약 500여 곳의 미술관이나 대학에 대여해 모두가 그의 컬렉션을 감상 할 수 있도록 했다. 

멕시코시티에 들어선 수마야 미술관 전경.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멕시코 통신재벌인 카를로스 슬림이 설립했다.

엄청난 현대 드로잉 소장품으로 유명한 유디스 로스차일드 재단은 미술가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장학사업을 동시에 펄치고 있다. 1993년 세상을 떠난 화가 로스차일드의 재산과 소장품이 중심을 이룬다.

여기에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Steve A. Cohen, 1956~ )도 코네티컷에 사립미술관을 개관할 생각으로 준비 중이다. 브라질에서 광산업으로 부를 일군 베르나르도 빠즈(Bernardo Paz, 1949~ )는 노천철광석이 몰려있는 미나스 주 벨루오리존치에 2006년 이뇨칭(Inhotim)미술관을 열었다. 식물원을 겸하는 거대한 자연속 미술관은 미술관의 개념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다. 

브라질의 광산업자 빠즈가 브라질 미나스에 설립한 이뇨칭 미술관. 식물원을 겸하는 미술관이다.

멕시코시티에 1994년 문을 연 수마야미술관(Museo Soumaya)은 세계 제일의 부자라고 불리는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 1940~ )이 세운 미술관이다. 로댕의 컬렉션은 압권이다. 2011년 새로운 부지에 약 1조원을 투입해서 자신의 사위인 건축가 페르난도 로메로( Fernando Romero)의 설계로 개관했다. 입장료는 모든 사람이 언제나 와서 보라는 의미에서 공짜다. 르네상스 시대를 비롯해서 인상주의 근현대미술, 그리고 라틴미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글, 사진= 정준모(前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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