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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승원 작가 “싯다르타는 사회적 부조리에 대항했던 개혁가”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고대 인도에선 계급 차별이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됐습니다. 싯다르타의 출가는 이 같은 계급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혁신적인 생각으로 신의 뜻에 대항하고자 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승원(75) 작가가 붓다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사람의 맨발(불광출판사)’을 출간했다.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와 만난 한 작가는 대화 내내 붓다를 출가 전 이름 싯다르타로 불렀다. 이 같은 작가의 태도는 붓다를 초월적 존재로 바라봤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등 기존 작품들과 명확히 선을 그으려는 의도로 보였다. 작가는 작품 대부분의 분량을 붓다가 깨달음을 얻기 전 청년기에 집중했다. 원로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그이지만 붓다를 철저히 고뇌에 찬 ‘인간’으로 바라보는 전복적인 시선은 젊은 작가 이상으로 도발적이다.

한 작가는 소설을 쓸 땐 반드시 써야 할 당위가 있어야 한다며 동시대와의 호흡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는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싯다르타가 살던 시대의 계급사회 이상으로 엄혹한 계급사회”라며 “한국 사회 전체가 자본주의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있는 이 때, 젊은 시절 싯다르타가 출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돌아보며 그 정신을 현재에 되새겨보고 싶었다”고 집필의도를 밝혔다.

작품 속 젊은 싯다르타는 구도자보다 개혁가에 가깝다. 남달리 총명한 싯다르타는 주변의 부조리를 응시하며 그 같은 부조리가 과연 신의 뜻인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신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나를 낳자마자 죽게 했을까. 그 신은 어찌하여 찬타카를 내 마부로 만들고, 칸타카를 말로 만들고, 나를 이 왕국의 태자로 만들었을까. 농경제전에 양의 피를 뿌리던 브라만 사제들은 신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만일 신이 있다면, 그 신이란 것은 사람이 타는 말 같은 것, 사람이 부리는 일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장차 왕이 된다면, 나는 신을 일소처럼 부리는 왕이 되어야 한다.”(53~54쪽)

싯다르타는 계급차별이 신의 뜻이라는 뛰어난 스승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불가촉천민의 교화와 삶의 개선에 노력한다. 싯다르타의 개혁은 쉽지 않았다. 장인이자 나라의 재정대신인 다리나가 싯다르타의 생각이 결코 기득권층에 유리하지 않음을 간파하고 그를 궁에 연금했기 때문한다. 

한 작가는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외쳤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오로지 나만이 존귀하다’는 오만함이 아니라 ‘절대고독’을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며 “싯다르타는 계급차별과 같은 부조리가 신의 뜻이라면 잔인하다는 생각에 신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출가를 결심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장인의 벽에 막혀 뜻을 펼치지 못한 싯다르타는 그동안 굴레가 된 고귀한 신분을 스스로 버리고 출가를 결심하며 가죽신발을 벗고 맨발로 세상을 향해 나선다. 한 작가는 싯다르타의 출가가 진리를 깨닫는 것을 넘어, 불합리한 제도로 핍박받고 탐욕에 찌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시각은 숫타니파타와 같은 경전에 담긴 초기 불교의 가르침보다 화엄경으로 대표되는 대승불교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나는 나의, 더 이상 드높을 수 없는 최상의 깨달음, 무상정등정각을 위하여, 더 나아가서는 가엾은 가난한 천민과 탐욕으로 인해 처참하게 타락하여 몸과 마음이 병들어 지옥에 떨어지려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혹독한 계급 제도로 인하여 슬퍼하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밟아간 그 길을 갈 것이오.”(212쪽)

한 작가는 “인도와 동남아 등 불교 국가들을 여행하며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와불(臥佛)의 맨발이었다”며 “왕자 시절 물소가죽에 금은보화로 치장된 신발을 신었던 싯다르타는 출가하면서 맨발로 길을 나선다. 맨발은 곧 출가를 의미하고 이 작품의 제목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작품에서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싯다르타가 출가 전에 방안의 커튼, 책, 촛대와 같은 물건과 마부인 찬타카, 늙은 말 칸타카와 작별하는 모습이다. 한 작가는 최근 들어 이별을 연습하는 중이라며 삶에 대한 짙은 회한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작가는 “출가는 한 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나는 싯다르타가 주변의 모든 것과 일일이 작별하는 모습을 쓰며 홀로 목이 메고 슬펐다”며 “이제 내 나이도 76세로 많은 나이이다 보니 지나친 들꽃 한 송이도 아쉽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삶을 안타까워하며 더욱 진실하게 살려고 애쓰게 됐다. 싯다르타가 작별하는 모습을 보면 이 소설을 쓴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작가는 이번 작품을 끝으로 역사 속 인물을 다룬 소설을 집필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는 “아버지가 남로당원이었던 남자의 이야기를 꼭 쓰고 싶다”며 “난 소설에 미쳐서 한 작품을 쓰면서도 늘 다음 작품을 생각해왔다. 나는 살아있는 한 글을 쓸 것으로, 글을 쓰는 한 살아있을 것”이라고 강한 창작 의지를 비쳤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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