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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문호진> ‘몰빵배구’와 삼성, 한국경제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던가. ‘배구 권력’ 신치용 감독 앞에서는 무색해지는 말이다. 신 감독의 삼성화재는 창단 후 18번(아마추어 포함)의 겨울리그에서 모두 결승에 올라 16번 우승했다. 특히 프로배구가 출범한 2005년부터 올 시즌까지 10차례 챔피언 결정전에서 8번 정상에 올랐고, 7번을 내리 우승했다. 프로스포츠 사상 첫 7연패의 금자탑도 쌓았다. ‘프로 팀 감독은 파리 목숨’이라는 현실에서 신 감독은 20년째 보좌에 앉아 있다. 배구 권력 20년의 비결은 뭘까. 신 감독은 지난 9일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특강을 했다. ‘신한불란(信汗不亂)’. 경영 영감을 얻으려는 스타 CEO들에게 쥐어준 사자성어다. 흘린 땀의 대가를 믿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 감독은 사자성어로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압축했지만 그의 리더십을 풀어보면 삼성의 핵심가치와 닮아있다. 원석이던 외국인 선수를 다이아몬드로 만드는 조련술, 경기의 맥을 읽고 맞춤형 전술을 내놓은 용병술, 우승 DNA를 심어주는 멘탈 관리, 그리고 ‘닥치고 훈련’으로 다져진 기본기와 체력, 철옹성 같은 조직력이 ‘신치용 배구’의 요체다. 이는 인재제일, 초일류 지향, 혁신선도, 기회선점, 마하경영 등 삼성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신 감독은 당분간 삼성 정신의 전도사로 그룹내 이런 저런 강연 무대에 설 듯 싶다. 히딩크 감독의 멀티 플레이어론과 김성근 감독의 데이터 야구론이 그랬던 것 처럼 신 감독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하려는 기업들의 러브콜도 이어질 것이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신치용 배구가 한국 배구에 ‘독’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삼성화재는 기량이 출중한 용병에게 공격을 전담케 하고 한국 선수들은 리시브와 토스, 수비에 집중케 하는 분업화된 배구를 한다. 용병인 레오의 공격 점유율은 60%에 달한다. ‘몰빵배구’라는 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이전에는 안젤코, 가빈이 해결사 역할을 했다. 문제는 다른 팀도 ‘우승에 특효’라며 몰빵배구를 따라 한다는 거다. 자연히 국내파 공격수의 경쟁력은 갈수록 약화된다. 이러다 보니 세계 무대에서 나름 존재감을 보이던 한국배구가 2000년 이후 3회 연속 올림픽 무대조차 밟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한국 배구의 자화상은 한국경제의 불안한 위상과 닮은 꼴이다. 우리 배구가 용병에게 기대듯 한국경제의 삼성 의존도도 심각하다. 지난해 삼성그룹의 매출은 약 345조9000억원(17개 상장사 기준)으로 우리나라 명목 GDP(1428조2950억원)와 견줘 24%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그룹내 매출 비중은 73%, 영업이익은 92%를 차지한다. 삼성전자가 흔들리면 삼성그룹이 휘청거리고 삼성그룹이 휘청거리면 한국경제도 출렁거리게 된다.

용병이 승부를 결정짓는 몰빵 배구로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쓰여지지 않는다. 강스파이크의 전설인 강만수ㆍ장윤창ㆍ김세진의 계보를 잇는 스타 선수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경제도 삼성 원톱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기업ㆍ강소기업ㆍ창조형 벤처기업이 세 다리로 균형있게 받쳐야 한국경제의 안정성과 세계 경쟁력이 높아진다.

문호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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