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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선행학습금지, 사교육 못 잡으면 공염불
교육부가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고교 수준 밖의 입시 문제를 내 적발되면 해당 대학에 입학정원 10% 강제 감축, 3년 간 재정지원사업 참여 제한 조치가 뒤따른다. 모든 고교 선행학습은 물론 반 배치고사에서도 교과과정 외 출제가 금지된다. 특목고 자사고와 대학 모두 사후평가가 의무화돼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된다. 특별법까지 만들어야 할 정도로 왜곡된 교육 현실이 가슴 아프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법으로 담기엔 현실적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 자칫 공교육은 더욱 피폐해지고 사교육 천국이 될 수 있다. 우선, 고교 현장에서 선행금지가 쉽지 않다. 특목고는 이미 고교 수준을 넘어서는 교육과정을 진행해 왔다. 대부분 일반고도 입법 예고 전부터 이미 가짜 진도표에 과목 이름만 바꿔 선행학습을 계속하고 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이다. 중학생들도 학원에서 2학년이나 앞선 고교 과정을 배우고 있다. 학부모들도 모든 학교가 선행을 안한다는 보장이 없기에 내 아이만 뒤처질까 두려워 선행 금지를 마냥 반기지 못하는 형편이다. 법률상 예습과 선행학습과의 구분도 모호하다. 이런 현장의 문제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선행금지법은 공염불이 된다.

선행 여부를 판단할 객관적인 평가 기준 마련도 쉽지 않은 과제다. 특히 대학입시는 문제의 난이도와 유형이 천차만별이다. 교육부가 실행 매뉴얼을 8월 말까지 마련한다지만 평가 잣대가 흔들릴 개연성이 충분하다. 교육당국과 대학 간 또다른 갈등이 빚어지지 않도록 객관적이고 치밀한 기준 마련이 요구된다.

선행학습의 온상인 사교육업계 대책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선행학습 광고ㆍ선전을 못하게 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요즘 이름난 학원은 엄마들 입소문으로 커 간다. 과외 선행학습도 규제할 길이 없다. 공교육 선행만 잡다간 사교육 업자만 돈방석에 앉게 할 지경이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아이들은 사교육의 노예로 전락하고, 학교 교실은 학원 숙제나 하는 통제불능의 공간으로 전락해버린다.

당장은 공교육 정상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다. 선행 금지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현장의 교사와 가정의 부모들이 법 취지를 이해하고 공교육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최선의 도움을 줘야 한다. 교육당국도 선행학습 금지안 이후의 사교육 대책을 충분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민간 영역의 문제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범정부 차원에서 공교육과 사교육 간 절묘한 접점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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