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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홀로 선 청년 사실상 빈털터리…주거약자’
[헤럴드경제 = 윤현종 기자] # 1. 결혼 2년차 이 모(30ㆍ여)씨 부부는 작년 초 서울 옥수동 A아파트 전용 59㎡에 전세금 3억원으로 입주했다. 외벌이 남편의 월 소득은 실수령 기준 300만원 정도. 전세금은 시아버지가 전액 마련해줬다. 부부는 수도권에 전용 84㎡아파트(시가 4억∼5억원 상당)도 갖고있다. 역시 부모님이 사줬다. 하지만 이들은 옥수동을 ‘선택’했다. 다리 하나 건너면 강남일 정도로 교통이 편하고 본가 식구도 강남에 살아서다.

실제 A아파트엔 부모 도움으로 이사한 청년층 가구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입주민은 “또래 ‘초보맘’ 모임에 나갔더니 그들 모두 집값의 최소 80%이상을 부모에게 받아 들어온 경우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인근 B공인 관계자도 “A단지는 ‘엄마(아빠), 나 이 집 사줘’를 통해 집값을 해결한 20∼30대 신혼부부가 전체 가구의 40%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한국 청년들은 부모없인 홀로서기가 쉽지않다. 청년층 주거지원을 위해 ‘주택협동조합’이 설립되는등 노력도 진행되고있다. 사진은 서울 옥수동의 한 아파트 단지.

중ㆍ고층에서 한강이 보이는 이 유명브랜드 단지(총 1820여가구ㆍ2012년 말 입주)전용 59㎡(3층)의 3월 신고거래가는 5억50000만원이다. 84㎡(5층)는 7억3000만원이다.

# 2. 결혼 3년차 맞벌이 윤서준(가명ㆍ32)씨 부부는 수도권 한 주공아파트(전용면적 85㎡)에 전세금 1억8000만원을 내고 산다. 빚은 전셋값의 절반수준. 부모님이 어렵게 9000만원을 지원했다. 맞벌이 중인 부부 소득은 월 450만원 정도다. 그러나 3개월 뒤 재계약할 이곳에선 더 살기 어렵다. 전셋값은 5000만원 가량 올랐고, 빚을 더 내는 건 부담이 크다. 직장(서울 도심)에서 더 떨어진 전셋집을 찾는 윤씨는 “죄송스럽지만, (본가에서) 1억원만 더 보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털어놨다.


누구는 부모의 전폭적 도움을 등에 업어 거주지를 선택할 여유까지 있다. 반면 누구는 본가 지원이 부족해 주거비 ‘장벽’에 떠밀리는 게 한순간이다.

그러나 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력으론 빚을 내도 집값 감당이 어려운 ‘주거약자’라는 것. 이씨는 9년, 윤씨 부부는 최소 4년 간 ‘지출 0원’으로 월급을 모아야 전세금이라도 스스로 댄다. 청년주거가 맞닥뜨린 불편한 현실이다. 관련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 “청년층은 주거약자다” = 전문가들은 젊은층 대부분이 겉보기엔 부모 지원을 받는 것으로 간주돼, 이들을 주거약자로 보기 주저하는 시각을 꼬집고 있다.

진남영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은 “소득 관점에서만 청년주거현실을 봐 온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청년은 벌이만 괜찮아지면 집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것이라는 일종의 ‘신화’가 존재해왔단 의미다. 

문제는 소득이 높아도 부모의 ‘우산’이 걷히는 순간, 자력으론 월세 감당조차 어려운 청년이 대다수라는 점이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만20∼34세 청년층은 주거안정을 위한 내집마련의 의지는 강하지만 돈(경제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특히 월세→전세의 주거상향은 구조적으로 봐도 가장 어렵다고 진단했다.

객지에서 혼자 벌며 월세를 살지만 부모의 얼마 안 되는 재산때문에 자격제한에 걸려 주거복지 혜택을 못 받는 청년도 무수하다. 통계엔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선 소득ㆍ연령ㆍ세대원(가족) 수 등으로 자격제한을 둔 현행 공공임대 공급시스템도 청년층엔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분석이다. 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공공임대주택 95만여 가구 중 20~34세 입주 비중은 11만6157가구로 12.2%가량 된다. 


특히 청년 인구가 밀집한 서울의 경우 공공임대 16만8000가구에 사는 청년층 비중은 8375가구로 5%정도다. 연구소의 최은영 박사는 “청년을 (임대가구 입주대상에서) 공식적으로 뺀 건 아니지만, 가구원 수나 소득 등으로 이들을 실질적으로 배제하는 현실이 수치로 입증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 “집값, 너무 비싸다” =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오른 집값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변창흠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청년들이 자신의 노동이나 자본투입만으로 집을 구해야 했다면, 결과적으로 이렇게 집값이 높을 수 없을 것”이라며 “집값 자체가 너무 비싸다는 게 청년주거 현실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거엔 수억원대 집값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계속 올랐기 때문이다. 전세 살던 부모 세대는 어느정도 모인 종잣돈에 전세금 뺀 돈을 얹어 집을 샀다. 집값이 오르면 그때부터 ‘평수(면적) 갈아타기’로 재산을 불렸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도 이런 식으로 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세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1987∼2006년까지 30년 간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준 재산의 75%는 부동산 자산이다.

2000년대 초ㆍ중반 독립한 자녀들(현재 30대 후반∼ 40대 초반)은 그래서 너도나도 전세를 찾았다. 그런데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를 기미가 안 보였다. 지금 이들 대부분은 집 사기를 포기하고 전세에 주저앉았다. 새 전셋집은 점점 줄었다. 뒤이어 독립한 현재의 20∼34세 청년 대부분이 전세 구하는데 애를 먹는 주된 이유다. 월세는 그 사이 무섭게 파고들어 주택시장의 주류가 됐다.

변 소장은 “전세 위주였던 우리 주택시장이 너무 급작스레 월세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화에 자산도 소득도 부족한 청년들만 애꿎게 노출돼 버렸다”고 분석했다.

▶ 문제, 스스로 해결한다 = 이같은 현실을 청년층 스스로 타개하려는 노력이 본궤도에 올랐다. 지난달 28일 청년 주거복지 시민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에서 공식 발족한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이하 조합)이 그것이다. 이날 창립대회엔 청년주거문제에 관심을 보여 온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조합은 조합원 출자로 주택을 매입 또는 임차해 조합원에게 일정 기간 저렴한 임대료에 공급할 예정이다. 장기 계약으로 임대료는 시세의 75% 정도로 낮춘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9월부터 준비작업을 시작한 조합은 3월 현재 출자금 355만원, 조합원 43명을 모았다. 조합원 대다수는 20대후반∼30대 초반으로 구성돼 있다.

조합 측은 “높은 주거비를 감당키 어려운 청년들의 주거현실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협동조합 설립을 통해 민간 주도의 비영리 주거모델이 확산할 것”이라며 “공공주택의 역할을 통해 공유와 소통의 가치도 회복하는 모범 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정리한 ‘국외 주택협동조합의 운영형태’에 따르면 현재 21개국에서 이같은 주택협동조합을 꾸리고 있다. 이 중 16개국은 사업형태에 ‘임대형’을 포함하고 있다. 조합원은 임대보증금 명목으로 출자하고, 협동조합은 이를 매개로 집을 지어 조합원에게 빌려준다. 보증금은 퇴거 시 돌려받는다. 전세형태의 운영도 가능하다. 스웨덴 등 일부국가에선 지어진 집의 시세차익을 일정부분 나누기도 한다. 연구원의 강세진 이사는 “조합원의 편익은 스스로 주택가격과 서비스의 질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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