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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김현중, “'생활의 달인'은 연기 선생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소녀팬의 함성을 받고 자란 아이돌 스타는 몇 겹의 판타지가 뒤덮인 캐릭터를 브라운관으로 고스란히 안고 왔다. “하얀 천과 바람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KBS2 꽃보다 남자)는 낯 간지러운 대사는 김현중에게 순정만화 주인공 이미지를 겹겹이 덧씌웠다. 데뷔 10년, 새하얀 피부에 교복이 잘 어울리던 그는 검게 그을린 구리빛 피부만큼이나 달라져 있었다.

정통 누아르를 표방했던 KBS2 ‘감격시대’는 김현중에겐 의미 깊은 드라마였다. ‘소녀팬’들을 넘어 40대 이상 중년남성에게 김현중이라는 배우의 이름 석 자를 알렸고, 예쁘기만 했던 미소년이 거친 남자로의 변신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스물아홉까지 살아온 내 감정들을 다 쏟아냈다”는 김현중의 눈이 문득 공허해보였다. “앞으로 뭘 끄집어내야할지 모를 정도로 다 써버린 것 같아요.”

[사진제공=키이스트]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낸 드라마는 끝이 났지만, 아직 신정태와 이별하지는 않은 김현중과 지난 5일 늦은 오후 마주 앉았다.

“차기작을 고르기 위해 대본을 읽었지만, 지금은 슬픈 감정만 이어지고 있어요.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슬픈 것 같고. 신정태에게서 빠져나오지 않아 대본 분석이 안되더라고요.”

애정을 가지고 만난 캐릭터였던 만큼 고민을 반복했다고 한다. 신정태와 처음 만나던 날 김현중은 캐릭터에 다가서기 위해 오롯이 ‘신정태’가 돼보기로 했다. “신정태라는 사람의 과거부터 시작했어요.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아빠는 언제 사라졌고, 엄마는 언제쯤 돌아가셨는지. 동생은 어디가 아팠는지, 자주 거닐던 곳은 어디였는지, 누구와 교류했는지.”


매일 같은 고민과 생각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김현중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를 스치는 복잡한 눈빛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100%를 쏟아부은 후회 없는 연기”였기에 자신을 다 비워낸 듯 공허했고, 모든 걸 잃었던 캐릭터가 남아있어 조금은 고독해보였다.

드라마는 그러나 김현중이 연기 하나에만 몰입하기에는 쉽지 않을 만큼 잡음이 많았다. 작가 교체, 주조연 배우의 중도 하차, 여주인공의 겹치기 논란에 출연료 미지급 논란까지 불거졌다. 임금 미지급 논란에 맞물리는 스태프의 처우 개선 이야기도 김현중의 입에서 나왔다. 한류스타 반열에 오른 그로선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지 몰라도, 김현중에겐 당연히 해야할 말이라는 공감도 있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쪽대본이 나오고, ‘생방’ 촬영이 이어지는 드라마 환경은 어느 나라에도 없는 시스템이에요. 밤을 새워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고, 임금 미지급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죠. 당연한 권리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는 주연배우 위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요. 배우들은 작품이 잘 되면 CF와 같은 부가적 수입이 있지만, 스태프와 엑스트라는 이게 전부인 데다, 그들을 보호해줄 장치가 없어요.”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건 모두가 같다는 생각에 김현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스태프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그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또 임금 미지급으로 파업에 들어갔던 스태프의 힘든 상황을 기다려주는 것도 주연배우의 몫이었다고 판단했다. “어렸을 때 연예계에 데뷔해서 그런지 소외된 입장에 놓여봤다”는 그는 “내가 조금 나은 사람이 되고, 나은 위치에 있을 때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공감했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대치였죠. 가해자는 나타나지 않았고요. 제작비도 입금이 안돼 장비는 하나둘 사라졌어요. 그래도 드라마에서 티가 나지 않았던 건 배우들이 생명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배우들의 생각이었어요.”

잡음은 드라마 중반 이후 계속됐지만, 김현중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부쩍 성장한 모습이었다. 연기도 호평의 연속이었다. 거친 액션과 처절한 내면연기도 자연스레 소화하자 ‘김현중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도 끊이지 않았다. “그런 거 다 회사에서 낸 거”라며 “연기 칭찬에 휘둘려 괜스레 들뜨고 싶지 않다”지만 그래도 연기를 지속할 힘은 생겼다. 카메라에 들어온 빨간 불빛을 바라보면 ‘불안한 두근거림’은 금세 사라져 편안한 마음이라고 한다.

“‘꽃보다 남자’ 때는 그 나름대로 100%의 연기를 했어요.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은 더 나이를 먹었으니 어른답게 연기를 한다는 거겠죠.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은 그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드라마 내내 ‘감격시대’ 꿈을 꿨어요. 연기가 안 된다 싶다면 끝내려고 했어요. 자질이 있어야 월 해도 할 텐데, 이렇게 했는데도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는다면 그만 두려고 했죠.”

지금은 정신없이 달려온 김현중에게 조금의 여유를 주고 싶다고 한다. “신정태를 벗고 완전히 백지 상태가 되돌려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다시 연기할 수 있는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겠다고 한다.

김현중은 아마도 쉬는 기간 좋아하는 술을 마시기도 하고, ‘VJ특공대’나 ‘생활의 달인’을 보며 연기공부를 할 지도 모른다. “일 말고는 의욕을 갖는게 없다”는 김현중이 자투리 시간을 보낼 때 하는 일들이다.

“사람사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족발집 사장님,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 우리가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연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발성이나 발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얼마나 잘 보여주느냐가 연기 아닐까요. 제 나이가 보여줄 수 있는 감정,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연기로 돌아와야죠.”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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