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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토박이도 모르는 ‘서울의 맛’
발품팔아 찾아낸 도시의 속살
맛집 · 아픈 역사 등 소상히 담아

1달러면 어디든 가는 지하철 환상적
상수 · 합정역 고유 색 잃어 안타까워


찰리와 리즈의 서울 지하철 여행기
/찰리 어셔 지음, 리즈 아델 그뢰쉔 사진
/공보경 옮김
/서울셀렉션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지하철 명동역. 미국에서 건너온 이방인은 역 부근의 한 가정집 마당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를 통해 화려한 모습에 가려진 명동의 과거를 되짚는다. 그는 녹사평에서 서울 사람도 잘 모르는 막걸리 맛집을 찾아 소개하고, 창신역에선 비빔물냉면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심지어 그는 합정역에서 점점 상업화돼 가는 거리에 대해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상계역 인근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철거민의 아픈 역사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서울 토박이들도 이 이방인 앞에서 서울자랑을 하기 어려울 듯싶다.

미국인 찰리 어셔가 글을 쓰고 리즈 아델 그뢰쉔이 사진을 찍어 엮은 여행기 ‘찰리와 리즈의 서울 지하철 여행기’ 속에는 서울사람도 잘 모르는 서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 지하 1층 서울셀렉션 북숍에서 기자와 만난 어셔는 “단돈 1달러면 서울에서 원하는 곳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지하철은 환상적인 여행 수단”이라며 “서울에서 사는 동안 지루했던 기억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고 지하철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미국 위스콘신주 출신인 어셔는 위스콘신대 졸업 후 뉴질랜드, 이탈리아, 호주 등 30개 이상의 나라를 여행하다 한국의 음식과 사람에 반해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서울에 온 것은 2006년인데 당시엔 홍대, 이태원, 강남 등 잘 알려진 곳에만 다녔었다”며 “2009년 다시 서울로 오게 된 후에는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어 시내 곳곳을 돌아다녀 보기로 결심했고 그때 선택한 이동수단이 지하철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서울 지하철의 운행 범위는 대단히 광범위해서 닿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영국과 비교해 훨씬 저렴하다”며 “지하철은 역에서 내려 출구를 통해 빠져 나가기 전까지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행기 여행과 닮아 있어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어셔는 2009년부터 리즈와 함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역과 자주 가본 역들 중 하나를 골라 한 주에 한 역씩 여행을 다녔다. 이들의 여행기는 블로그(www.seoulsuburban.com)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들은 방이역에서 장미공원, 양재역에서 숲을 발견하며 서울에 생각보다 공원과 녹지가 많이 형성돼 있음을 깨닫는다. 또한 이들은 외국인이라고는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는 신당역 인근 중앙시장에서 오래 전 서울의 모습을, 거여역 옆 달동네에서 서울의 누추한 이면을 들추기도 한다. 피상적인 소개에서 벗어나 번화가와 뒷골목을 넘나들며 서울의 속살을 엿본 이들의 독특한 여행기는 미국의 일간지 LA타임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 등 유수의 매체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140개 역을 여행한 이들은 이 중 31개 역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어셔는 “한국 사회는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놓인 언어 장벽이 커서 한글을 잘 모르면 눈앞에 놓인 것도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며 “서울은 속을 쉽게 보여주지 않아 애를 태우는 연인과 같아서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아 매력적인 도시”라고 말했다.

‘찰리와 리즈의 서울 지하철 여행기’의 저자인 미국인 찰리 어셔(왼쪽)와 리즈 아델 그뢰쉔. [사진제공=서울셀렉션]

어셔는 사라지고 변해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상수역과 합정역 부근은 개성적인 분위기를 가진 곳이어서 좋아하는 장소였는데 점점 상업화돼 가며 대형 마트, 프랜차이즈 커피숍, 유명 의류매장이 자리를 잡아 고유한 분위기를 잃어버리고 있어 안타깝다”며 “동양의 관광객들과는 달리 서양의 관광객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K-팝 같은 한류가 아니라 전통문화와 역사인데 이에 대한 관리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소홀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어셔는 여행기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서울에서 사는 한 지하철 여행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지만, 내가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행을 이어가 줄 사람을 찾고 있다”며 “새로운 이방인의 눈을 통해 새로운 서울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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