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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 이종덕> 별그대의 선물 ‘DDP 언덕’
미술의 본령은 창작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을 통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창의적인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윤리성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21일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5년간의 대공사 끝에 문을 열었다. 3년간 출근길에 매일 이곳을 지나치면서 “도대체 얼마나 크고 웅장한 건축물이기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지난달 23일 필자는 개관과 동시에 시작된 ‘서울패션위크’ 디자이너 진태옥 패션쇼에 초청돼 이질적인(?) 외관을 온전히 드러낸 그 곳, DDP를 방문했다.

수많은 인파속의 젊은이들은 각자 개성있고 화려한 모습으로 자유롭게 그 공간을 즐기고 있었다. 평소 문화예술과 관련한 컨퍼런스와 공연계의 흐름을 읽기 위해 해외를 자주 방문하는 편이지만 이번 DDP에서 만난 패션피플을 보며 이제 정말 한국이 많이 성장하고 개방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패션쇼를 관람하기 전 VIP룸으로 안내를 받아 관계자에게 들은 DDP의 깊은 속사정(?)은 그동안 근처를 오가며 약간의 의문을 갖고 있었던 필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다.

‘비정형 건축의 대가’인 이라크계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바로 DDP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관문이었던 이곳을, 하루에도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오가는 투박하고 거친 동대문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탄생시킬 건축가가 이라크 출신 여성이라니. 과연 외국인 여성 건축가가 이 역사 깊은 동네를 얼마나 이해해 조화로운 건축물을 탄생시킬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그 모습을 드러낸 DDP의 외관을 보며 혹자는 “주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조물”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관계자의 설득력 있는 설명은 이렇다. 시장경제의 중심인 동대문의 주변환경이 쉽게 개선되지 않아 늘 고민이었는데 동대문운동장을 대신할 DDP가 기능뿐만 아니라 그 외관까지 동대문을 격상시켜 줄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는 콘셉트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 세계적인 수준에 있는 한국 패션과 디자인의 시발점이 동대문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 아닌가?

필자는 20만이 넘는 인파가 찾았다는 ‘오후의 DDP’를 차분한 마음으로 걸어보기로 했다.

4만5133장의 각기 다른 알루미늄 패널을 쓰다듬으며 기둥하나 없는 이 곳을 걷고 있자니 마치 광활한 블랙홀 속에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건축물의 보석같은 공간이라 불리는 디자인 둘레길 조형 계단을 올라 DDP의 4층에 당도하자 탁 트인 잔디언덕이 펼쳐졌다. 자하 하디드가 기대했던 ‘언덕 같은 건축물’의 의미가 온 몸으로 전해져 오는 듯 했다.

서울시민과 82년 역사를 함께 해 온 기억과 향수의 공간 동대문운동장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동대문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멀리 타국에서 온 여성 건축가도 이곳에서 평범한 ‘서울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멋진 언덕’을 선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 한 가운데 착륙한 이 우주선 같은 건축물은 마치 ‘별에서 온 그대’처럼 시민들의 일상에 특별함을 부여해 줄 것이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이 전해주는 희열과 감동. 이것이야 말로 예술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DDP를 ‘도전하는(D), 동대문의(D), Prosper(번성 혹은 찬란한 미래)’라고 풀어 보았다. 남녀노소 모두가 찾아오는 오래된 기억과 소시민의 희망이 숨쉬는 ‘이 동네’가 진정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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