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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정부 공인 전세 시세 ‘엉터리’ 논란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전세 재계약을 앞둔 사람들은 요즘 매주 나오는 전셋값 상승 뉴스에 하루하루 속이 타 들어갈 겁니다. 대부분 모아둔 돈은 없기 때문에 얼마나 오를까 노심초사하겠죠. 반면 집주인들은 전세 뉴스가 전셋값을 올리는 근거 자료가 될 겁니다. 다들 전셋값을 올리는 데 나라고 안올릴 수 없겠죠.

정부 승인 시세 작성 기관인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주(3월24일 기준)에도 전국 전셋값은 0.05% 올라 벌써 82주째 전셋값이 뛰고 있습니다. 비수기 없이 1년6개월을 오르기만 한 셈입니다.

그런데 27일 시민단체인 경실련이 세입자들 입장에서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공인 기관인 한국감정원이 내놓는 전셋값 시세가 ‘엉터리’라는 겁니다.

▶경실련, “한국감정원 시세 기초 자료 부실한 엉터리” = 주장은 이렇습니다. 경실련이 2주 동안 서울시 전세계약을 전수 조사를 했나 봅니다. 3월 1.2주간 서울 전체 3150개 아파트 단지의 전세 거래 동향을 확인했더니 30%인 942개 단지에서만 실제 계약이 이뤄졌답니다. 70%인 2208개 단지는 아예 거래자체가 없었다고 합니다. 단지별로 주당 0.24건의 거래만 있었던 셈입니다. 수백에서 수천가구가 모인 아파트 단지 4곳 가운데 1건의 전세계약밖에 없는데 어떻게 서울 전셋값이 오르고 있다는 통계가 설득력이 있느냐는 겁니다. 주간 가격변화를 산출할 수 있는 기초자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경실련의 주장입니다.

경실련은 “실거래가 존재하지 않으면 결국 호가(집주인 부르는 값)나 조사원의 조사 등 실제 시장에 통용되는 가격이 아니라 인위적인 가격이 발표될 수밖에 없다”며 “감정원의 엉터리 통계가 자극적으로 보도돼 소비자들의 불안심리만 커지고, 집주인들도 보도를 보고 호가를 높여 전세가격이 더욱 상승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감정원 ”과학적 표본주택 산정 문제없다“= 감정원은 즉각 반박 보도자료를 내놓았습니다. 감정원이 작성하는 전세가격 동향은 물론 모든 주택의 거래사례를 조사한 전수조사 결과는 아니라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과학적으로 설계된 ‘표본주택’의 실거래가격을 기반으로 전문 조사자가 주택특성(층, 향 등)을 보정하고, 감정평가 기법으로 산정한 시세 흐름이라는 겁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감정원의 전문 조사자는 중개업소에서 내놓는 시세흐름을 참고합니다. 어느 정도 호가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인정합니다.

결국 경실련과 감정원의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표본조사 결과를 믿을 만하냐는 것과 두번째는 실거래가만을 기준으로 시세 흐름을 작성해야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경실련은 이 두 사안을 신뢰할 수 없어 차라리 주간 단위 시세흐름을 발표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시장에 혼란을 준다는 게 이유입니다.

▶비싼 아파트 중심으로 표본 설계돼 시세 과장?= 하나하나 따져봅시다. 먼저 감정원의 표본조사 결과는 신뢰하지 못하는 걸까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경실련은 표본 자체가 고가 아파트 위주로 돼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감정원은 입장이 다릅니다. 감정원은 일단 전수조사의 경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미 1000만가구 이상인 전체 주택을 대상으로 통계를 작성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문제는 모집단을 기준으로 추출한 표본이 과학적인지는 여부라는 겁니다. 표본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경실련의 주장처럼 비싼 아파트 위주로 표본집단을 뽑았다는 건 말도 안되는 억측이라는 겁니다.

감정원에 따르면 표본집단은 매년 공시지가를 산정하는 총 주택수량을 모집단으로 삼아 통계 권위자의 연구용역결과를 바탕으로 뽑았다고 합니다. ‘확률비례추출법’ 등 여러 통계법이 적용 된다네요. 매년 공시지가 변화에 따라 표본집단은 계속 보정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표본을 뽑아 이들의 가격 흐름을 통해 전셋값과 매매값 동향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전수 조사를 못하더라도 충분히 시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거래가만 객관적이고, 호가는 반드시 틀리나?= 실거래가만이 주택시장 흐름을 제대로 반영한다는 주장은 어떤가요? 경실련은 감정원이 중개업자의 호가를 고려하는 시세를 뽑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주택 가격 흐름을 따질 때 실거래가만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중개업자를 통해 확인되는 시세는 아무래도 집주인의 의중이 반영된 호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집주인들의 과도한 기대치가 반영돼 하락 움직임은 제대로 포착되지 않고 작은 호재만 생겨도 금방 오르는 게 호가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부정확한 시세일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실거래가는 반드시 옳을까요. 그렇게 보기도 힘듭니다.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국토해양부 실거래가 자료를 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월드매르디앙 전용면적 82.01㎡형 전세는 올해 한 채도 거래되지 않고 지난해만 모두 4건 계약됐습니다. 그런데 이중 3건이 4억원이상에 계약됐습니다. 최고 4억3500만원(15층)에 거래된 것도 있고, 저층인 4층도 4억3000만원 세입자를 맞았습니다. 그럼 이걸 이 아파트의 진짜 전세가로 봐야 할까요?

그런데 호가를 기초로 뽑았다는 국민은행 KB시세로 이 아파트 전세는 현재 3억9000만-4억2000만원 수준입니다. 저층 평균이 3억9000만원인데, 작년 저층(4층) 마지막 실거래가는 4억3000만원입니다. 호가가 실거래가보다 오히려 하락세를 더 반영한 셈입니다.

최근 전셋값 상승세로 호가를 올렸는데도 이정도입니다. 지난해 하반기엔 이 아파트 전셋값 호가는 3억5000만원 정도까지도 떨어졌습니다.

▶거래량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실거래가 객관성 떨어져= 거래량이 많지 않은 상황에선 곳곳에서 이렇게 실거래가가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많게는 몇 년간 거래 실적이 없는 주택형도 많습니다.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삼아봤자 몇 년 전 가격인 셈이니 이를 기준으로 거래에 나서기 애매한 겁니다.

기본적으로 실거래가 정보는 거래량이 많을 때 힘을 발휘할 겁니다. 주택시장 침체기엔 참고사항일 뿐이지 이를 전적으로 신뢰하면 오히려 손해 볼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곳은 다 떨어지는데 몇년전 거래된 비싼 가격으로 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가의 힘은 여기서 발휘됩니다. 호가는 공산품으로 치면 ‘권장 소비자가격’이라고 봅니다. 권장 소비자가격은 생산자가 원가, 수요, 경기 상황 등을 고려해 임의로 붙이는 겁니다. 안팔리면 결국 가격을 내려 팔겠죠. 기업이 망하면 떨이로 내놓기도 하고요. 주택시장의 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주인이 최근 거래가격과 거래량, 개발호재, 시장상황 등을 판단해 임의로 정합니다. 개인 사정에 따라 급매물로 팔기도 하겠죠. 호가가 너무 높으면 소비자는 외면하고 집 주인은 가격을 낮춰 팔 수 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런 시장 작동 원리죠.

그렇다면 호가를 무시해선 안됩니다. 집값이 뛸 것이란 기대심리, 가격 하락에 대한 공포감 등 심리적인 요인이 모두 반영된 가격이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이나 매수자의 기대심리도 가격의 일부라고 봐야합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주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거래가나 호가나 일방적으로 맹신하는 것도 금물이지만 한쪽만 온전히 시장 흐름을 반영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각각의 특성을 이해하고 스스로 종합해 접근할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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