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외수 “예술은 우리 사회를 위한 최상의 방부제”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복도를 나서자 한 무리의 바람이 왈칵 나를 끌어안았다. 바람 속에 비 냄새가 섞여 있었다. 교도소 담벼락 너머에서 포플러들이 출감하는 나를 향해 분주하게 이파리들을 흔들어대고 있었다.”(단편 ‘완전변태’ 중)

이외수(68) 작가는 시적이고 회화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단문(單文)을 구사한다. 140자로 글쓰기가 제한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트위터에서 그가 170만여 팔로워를 거느린 ‘트통령’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장의 힘이었다. 시집, 우화, 에세이 등 그가 쏟아낸 적지 않은 책들은 시대와 코드를 맞춘 문장과 감성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은 부피에도 불구하고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진 그의 문장은 사유의 깊이가 얕아진 시대에 일종의 대안이었던 셈이다.

이외수 작가가 오랜만에 본업인 소설집 ‘완전변태(해냄)’을 출간하며 소설가로 돌아왔다. 소설로는 지난 2005년 장편 ‘장외인간’ 이후 9년 만이며, 소설집으로는 1981년 ‘장수하늘소’ 이후 무려 33년 만의 작품이다. 그는 지난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새로운 작품을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외수 작가가 지난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새 소설집 `완전변태`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해냄]
이외수 작가가 지난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새 소설집 `완전변태`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해냄]

이 작가는 “트위터에 글을 열심히 올리니까 도대체 소설은 언제 쓸 거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는데, 트위터는 내게 습작 공간이었다”며 “140자로 제한된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일은 살코기만 도려내 접시에 담아 내놓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 자체로 훌륭한 문장 연습이었고, 그 결과물이 이번 소설집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 ‘완전변태’를 비롯해 ‘소나무에는 왜 소가 열리지 않을까’ ‘청맹과니의 섬’ ‘해우석’ ‘새순’ ‘명장’ ‘파로호’ ‘유배자’ 등 10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제도적 제한 속에서 꿈꿀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그린 ‘완전변태’,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은 ‘청맹과니의 섬’, 한국전쟁 당시 파로호에 수장된 중국군의 혼령과 기자를 화자로 내세워 제 역할을 못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을 담은 ‘파로호’, 물질 만능주의에 일침을 가하는 ‘대지주’, 삶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묻는 ‘해우석’처럼 이번 소설집은 문명과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공교롭게도 작품 속 문장의 단락들은 대부분 140자 내외로 맞춰져 있다. 부피를 줄인 문장은 날렵한 결을 보여주며 읽기에 속도감을 붙이다가 때로는 송곳처럼 다가와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을 멈춰 세우기도 한다. 


이 작가는 표제작 ‘완전변태’의 제목이 대중의 오해를 살 수 있음을 감안한 듯 “변태성욕자가 아닌 곤충의 변태에 대한 이야기”라고 너스레를 떨며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날개를 가진 곤충은 날개를 가지려면 반드시 번데기라는 절대고독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날개를 못 가진 곤충은 일생 동안 땅바닥을 기는 굴욕적 삶을 사는데, 의식에 날개를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차이도 이와 같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썼다”고 설명했다.

‘유배자’의 첫 문장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썩지 않게 만드는 최상의 방부제”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작가는 예술, 종교, 교육이 인간의 영혼을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문명ㆍ시대 비판적인 글은 우리 사회에 방부제 같은 역할을 한다”며 “작가는 인간을 정화시켜주는 예술을 위해 정신적이고 영적인 에너지를 작품에 녹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작가는 앞으로 대작 한 편을 마지막으로 소설 쓰기를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히며 마지막 작품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대부분의 소설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돈키호테-산초-공주’ 삼각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오행(五行)에 근거한 5명의 인물을 등장시킨 5권짜리 소설을 구상 중인데, 오행의 상생과 상극관계를 담은 이 작품을 통해 서양식 삼각구도를 극복하고 싶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작가는 “내 인생의 좌우명은 ‘길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기는 것’”이라며 “작가로서의 좌우명은 ‘쓰는 자로서의 고통이 읽는 자들의 행복이 될 때까지’다. 앞으로도 독자들을 행복하게 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123@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