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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 이민화> ‘제2의 벤처붐’ 의 전제조건들
이민화 KAIST 초빙교수ㆍ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제 2의 벤처붐 조성에 각 부처가 부산하다. 3년 간 4조원의 자금을 투입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벤처붐을 위한 정책의 우선 순위에 문제가 있다. 벤처시장에 자금은 모자라지 않다는 게 투자 현장의 이야기다. 자금 지원보다 규제 개혁이 우선이다. 그중 2001년 벤처 생태계를 황폐화시킨 3가지 규제의 해소와 원상 복원이 최우선 과제다.

2000년 한국은 또 하나의 세계적인 기적을 일궜다. 미국이 50년 걸린 벤처생태계를 불과 5년만에 만들어낸 것이다. 벤처기업협회 주도로 세계 최초로 만든 벤처기업특별법과 성공적인 세계 2위 신시장인 코스닥이 견인한 성과인 것이다. 당시 한국의 벤처는 이스라엘이 탐냈고, 벤처기업가들은 신랑감 1순위로 부상했다. 경영학의 구루 고(故) 드러커 교수는 기업가정신 1위 국가로 한국을 지목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기업가정신 하위로 전락하고, 한ㆍ중ㆍ일 삼국 중 압도적인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불과 15년 새 무엇이 이렇게 바꿔놓은 것일까.

2001년 전세계 IT버블이 붕괴했다. 미국의 나스닥, 유럽의 노이에, 일본의 자스닥과 함께 한국의 코스닥도 동반 하락했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인 동조현상이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마녀 사냥이 시작됐다. ‘묻지마 투자’, ‘무늬만 벤처’등의 용어로 벤처거품론을 제기하고 소위 ‘벤처 건전화 정책’이란 미명하에 벤처 규제정책을 쏟아낸 것이다. 그 대표적인 정책들이 1)코스닥과 코스피 합병 2)벤처인증제의 보수화 3)주식옵션제의 보수화 4)엔젤투자 세제 축소 등이다.

규제 정책의 결과는 참담했다. 2001년 1만2000개 가까운 벤처기업이 2004년 7000개 수준으로 줄었고, 우수 인력은 벤처 창업을 포기하고 대기업과 공무원으로 돌아섰다.

이런 와중에서도 2001년 이전에 창업한 벤처들은 굳건히 성장해 2012년 기준 416개의 1000억 매출 벤처가 탄생해 90조가 넘는 매출을 달성했다. 3만개 벤처의 매출액은 300조가 넘는다. 벤처는 이제 한국의 성장과 일자리의 두마리 토끼를 잡는 견인차로 부상한 것이다. 여기에 비해 벤처에 투입된 공적지원금은 IMF 당시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투입된 금액의 0.5% 규모인 2조원 미만이고 그나마 대부분 회수됐다. 벤처는 분명히 거품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코스닥은 벤처 투자와 회수의 선순환 고리다. 코스닥 상장 규모가 연간 150여개에서 20여개로 줄고, 상장소요 기간이 7년에서 14년으로 늘어나면서 코스닥은 급성장한 벤처 생태계의 연결고리 역할을 상실했다. ‘고위험 고수익’의 신시장을 ‘투자자 보호’의 전통 시장과 통합한 규제 조치의 결과다. 코스닥 문제의 핵심은 시장 운영철학을 뒷받침하는 지배구조의 문제다. 이제라도 초기 코스닥이 출범했던 ㈜코스닥이 복원돼야 한다.

벤처인증제는 소위 ‘무늬만 벤처’를 없앤다는 이유로 초기 연구개발 위주의 인증에서 융자보증 위주로 전환됐다. 융자보증은 망하지 않을 기업을 선별하는 것인데, 벤처가 가진 다산다사(多産多死)의 속성과 반대 방향으로 인증제도가 변경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초기 벤처들의 벤처인증이 어려워지면서 초기 벤처 지원을 위한 세계 최초의 벤처기업특별법의 의미가 퇴색해져버린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연구개발 위주의 초기 벤처인증 제도로 복원하는 것이 벤처생태계를 살리는 길이다.

주식옵션은 벤처가 인재를 유입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대박의 기회가 있어야 우수인력이 대기업보다 벤처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주식옵션과 시가의 차액을 기업의 손실로 반영하는 규제가 시행되면서 주식옵션 제도는 인재 유입의 역할을 상실하게 됐다. 국제 회계기준도 이에 대한 유연성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라도 주식 션의 회계기준을 복원해야 벤처에 인재가 유입될 것이다.

제2의 벤처붐은 어렵지 않다. 벤처기업협회가 주도했던 초기 벤처생태계를 복원하면 된다. 여기에 추가로 4조의 지원책을 더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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