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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박승윤> 좋은 규제 vs 나쁜 규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할 수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2011년 말 국회에서 통과됐다. 대형마트를 쉬게 하면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규제다. 이후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의 대형마트는 한 달에 이틀씩 의무적으로 문을 닫는다. 법원과 헌법재판소도 대형마트가 침해당하는 사익보다 영업시간 제한으로 인한 공익이 크다며 규제를 용인했다. 그렇다면 이 규제의 정책 효과는 어떤가.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의 매출은 당연히 크게 감소했다. 규제가 효과를 거두려면 전통시장은 반사이익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전통시장 매출은 2011년 22조1000억원에서 2012년에 21조1000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 감소폭은 더 큰 것으로 추정된다. 대형마트 규제의 수혜자는 전통시장이 아니라 온라인쇼핑몰과 외국계 SSM이라는 분석이다. 잘못된 규제로 시장만 왜곡시키는 모습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난 2001년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통해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고자 신용카드 규제를 완화했다. 카드사에 일반대출 업무를 허용하고, 신용판매 외에 현금서비스 등의 부대업무가 6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폐지했다. 규제 완화로 카드 대출이 무분별하게 크게 늘면서 빚을 갚지 못하는 수백만명의 채무불이행자를 양산했다. 그 여파로 카드사들은 경영난에 빠졌고 결국 2003년 카드대란이 터졌다. 잘못된 규제 완화였다.

규제는 양면성이 있다. 쓸데없는 규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대로 ‘암 덩어리’고 ‘쳐부숴야 할 원수’다. 반면 환경, 경제시스템 안정 등 국가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규제도 많다. 규제를 많이 푼다고 좋은 게 아니라 규제의 정책 목표와 효과를 제대로 따져보고 꼭 필요한 규제를 철저하면서도 투명하게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모든 규제는 그 나름의 명분과 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게 대형마트 규제고, 서민들의 집값 부담을 덜겠다는 것이 분양가 상한제다. 그런데 명분이 인기영합적이고 단선적인 규제는 대부분 부작용을 초래한다. 국가경제 전체를 보지 않고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만 챙기다 보니 애꿎은 피해자를 만들고 경제를 위축시킨다.

따라서 규제 정책을 펼 때는 먼저 어떤 사회를 만들지에 대한 국정 철학을 분명히 해 국민들의 공감대를 구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정책 방향을 확실히 정하고 그 기준에 맞춰 규제의 틀을 짜는 것이 순서다.

기왕에 있는 규제를 개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원칙에 맞는지 적합성과 시의성을 하나하나 따져서 없앨 건 없애고 키울 건 더 강화해야 한다. 수출산업이나 중소제조업 육성 등을 이유로 내걸었던 많은 규제 중에는 이미 용도가 다해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들이 많다. 반면 개인정보 보호나 금융 시스템 안정 등 강도를 강화해야 할 사안들도 있다. 우려되는 점은 대통령이 몰아친다고, 보여주기식의 물량 위주의 규제 완화에만 급급하다가 자칫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승윤 산업부장 parks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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