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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 박인호> 다시 읽는 ‘똥 살리기, 땅 살리기’
지난주 말, 집과 접한 밭에서 가축분 퇴비(밑거름) 뿌리기 작업을 했다. 한 해 농사는 대개 춘분(올해는 3월 21일) 전후로 시작되는데, 퇴비를 일찍 뿌려놓을수록 그 효과가 좋다고 하니 올해는 예년보다 열흘 정도 앞당겨 약 100포(1포 20㎏)가량을 일일이 손작업으로 시비했다. 필자에게는 한 해 농사를 위한 사전 작업에서 가장 고된 노동의 시간이기도 하다.

가축분 퇴비를 뿌리다 보니 문득 어릴 적 고향(강원도 춘천)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강원 산골에서는 ‘ㄴ자형’ ‘ㄷ자형’ 농가의 한쪽이 외양간이었다. 집 마루에 앉으면 외양간에 있는 소들과 그 뒤로 쌓인 큼지막한 소똥 무더기가 바로 보였다.

그런 집에서 가족들이 마루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기도 했지만, 소똥이 더럽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왜냐면 소똥이든 사람 똥이든 모든 배설물은 오히려 땅을 기름지게 하고 농사의 풍년을 가져다주는 귀한 ‘자산’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인분은 최고의 거름으로 대접받았다.

“밥은 나가서 먹어도 똥은 집에서 눈다’는 옛말은 얼마나 똥을 귀하게 취급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근교의 농민들은 시내에 들어와 돈을 내고 똥·오줌을 퍼갔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1900년대 초 수원에서는 똥재(재에 버무린 똥)가 상품으로 거래되었는데, 상등품 한 섬의 가격이 30전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다.

시골생활 5년차가 되니 친환경 농사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똥과 작물, 그리고 흙의 순환관계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똥은 음식을 먹고 나온 찌꺼기이지만 다시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작물)을 키우는 거름이 되고, 그 작물이 다시 밥상에 오르게 되니 똥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 순환의 한 고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순응하는 순환농법을 지켜왔다. 농가에서 장만해온 거름의 종류나 제조방법은 15세기 초의 ‘농사직설’이나 18세기 후반의 ‘천일록’ 등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모든 시골 농가에도 수세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사람 똥은 물에다 내다 버리고, 비싼 돈을 들여 가축분 퇴비를 사다 뿌리는 일이 당연시되었다. 정화조 시설을 갖춰도 수세식 화장실이 배출한 똥과 오줌이 청정 계곡과 상수원인 강을 오염시킨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원 땅값이 하천과 계곡의 상류일수록 더 비싼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일독한 책 ‘똥 살리기, 땅 살리기(원제 The Humanure Handbook)’를 다시 꺼내 읽었다. 저자인 조셉 젠킨스는 “인분을 퇴비화하는 사람은 밤하늘의 별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다”며 똥의 퇴비화를 역설했다. 필자도 올해부터는 이를 조금씩이나마 실행에 옮겨보려고 한다. 똥이 갖는 순환의 이치를 깨달아 실천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서다. 정작 더러운 것은 똥이 아니라 더러워진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이 아닐는지….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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