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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요배 “이 시대 그림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요즘 작가들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더라고요. 다른 도구들을 너무 많이 씁니다. 그런 게 너무 아쉽지요. 느낌이 ‘설명’을 따라가는 개념미술이 유행하는데, 그림은 ‘느낌’ 그 자체를 따라가야 합니다. 김명국(조선 17세기 화가)의 ‘달마도’를 보세요. 서너 번의 붓길로 거침없이 긋고, 힘차게 꺾으며 도인을 그린 그림은 그야말로 ‘획을 묘사하는 경지’를 보여줍니다. 그쯤 되면 철학자요, 구도자지요.”

제주에 살며 그림 그리는 강요배(62)가 소묘전을 열며 한 말이다. 강요배는 지난 1985년부터 최근까지 그린 드로잉을 모아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대표 우찬규) 본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강요배 소묘:1985~2104’라는 타이틀의 이번 작품전에는 1980년대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30년간 그린 아크릴화 4점을 비롯해 소묘 53점이 내걸렸다.

강요배 ‘바람타는 나무’. 2013

드로잉만을 한 공간에서 선보이는 전시를 열며 작가는 ‘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강요배는 “미술을 한다는 것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동일하게 생각하는데 이는 혼동이다. 평면작업이 모두 그림은 아니다. 이 둘은 비슷하긴 하나 사진 찍는 일을 ‘그림 그린다’고 하지않듯이 그림은 평면작업보다 더 특수하다”며 “그림이라는 말에는 조금 더 다른 뜻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싶고, 또 그리는 행위에는 어떤 마음 같은 것을 중요히 여기는 태도가 스며 있다. 몸을 통해 흐르는 마음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라고 밝혔다.

강요배 ’높은 오름' 1996

그는 드로잉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품어왔던 생각들을 피력했다.
“내게 드로잉은 본질로 가는 것이다. 날 것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 게 드로잉이다. 드로잉은 때론 밀도가 떨어질 수도 있지만 생생한 걸 좋아하는 이들에겐 더 반가울 것이다. 완결성도 아크릴화에 못지 않을 수 있다. 중국 미술에서도 ‘분본(粉本,밑그림)’의 중요성이 강조돼왔는데, 작가의 모든 게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대 강요배는 삽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소묘작업을 통해 작품세계를 다져왔다. 이번 출품작들은 바람 많은 땅 제주에 살며 작업하는 강요배의 느낌과 철학이 순수하고,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들이어서 작가의 진면목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강요배 ‘호박‘ 2014

이를테면 제주 곳곳에 산재한 돌하르방들(관덕정 등 모두 4곳)을 하룻만에 돌며 빠르게 그린 연작은 특별한 조형적 변주 없이 대상 자체를 덤덤하고 정직하게 드러내려한 작가의 작업관이 잘 나타나 있다. 또 중국의 리강을 빠르게 사생한 ‘리강’ 시리즈는 간결함 속에 기세가 온전히 살아있어 발길을 붙든다.

한편 1998년 금강산을 답사하며 그린 일련의 금강산 드로잉은 화가 강요배의 남다른 집중력과 실력을 엿볼 수 있다. 해변의 가파른 암벽과 솟은 바위를 신바람나게 그린 해금강 드로잉은 특히 돋보인다. 이밖에 제주의 오름, 물고기(붉바리) 등을 그린 소묘들에서도 싱싱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강요배 소묘전 전시전경. [사진제공=학고재 갤러리]

강요배는 “노래방에 가서는 모두들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종이를 주며 그림을 그려보라 하면 모두들 꽁무니를 뺀다. 모두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그림은 그림은 ‘거울’같은 거다. 즐거운 거다. 물론 쓸쓸할 수도 있다. 기운생동, 큰 느낌을 찾아내 그리면 된다. 진정으로 자유롭고 싶다면, 마음을 드러내고 싶다면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강요배의 소묘전은 오는 30일까지 계속된다. 02)720-1524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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