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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치올림픽] 담당기자로 지켜본 김연아의 9년
‘김연아’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건 2005년 초였습니다. 당시 피겨스케이팅을 담당하던 기자는 어느 날 대한빙상연맹 관계자의 들뜬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김연아라는 아이가 세계주니어피겨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땄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 피겨스케이팅은 정말 ‘남의 나라’ 얘기였습니다. 쇼트트랙만이 한국 동계올림픽의 전부였던 때였습니다.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김연아를 찾아갔습니다. 2005년 3월이었습니다.

다소 무뚝뚝한 표정의 김연아는 어떤 질문에도 “예” “아니오”로 짧게 답했습니다. 속으로 ‘낭패다’ 싶었습니다. 단답형 대답만으론 좋은 기사를 쓰기 힘들었으니까요. 분위기를 좀 띄워볼 요량으로 화사한 핑크빛 셔츠가 참 잘 어울린다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교정기를 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처음으로 씩 웃은 김연아는 “아침에 언니 옷 몰래 훔쳐 입고 나왔어요”라고 비교적 긴(?) 대답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다음 질문에서 기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목표를 묻는 질문에 김연아는 “음…” 하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올림픽 금메달이요”라고 했습니다. 한국 국가대표가 올림픽에 나가는 것도 힘들었던 시절에 금메달이라니.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습니다. 그리고 나온 김연아의 대답. 작은 목소리였지만 너무나 똑 부러진 말투여서 두고두고 잊기 힘들었습니다. “음, 올림픽에 나가는 게 첫 번째 꿈인데요. 그런데 나가면 왠지 1등 할 것 같아요.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대로 받아 적긴 했지만 믿지 않은 마음이 더 컸던 게 사실입니다. 옆에서 딸의 인터뷰를 조용히 지켜보던 어머니 박미희 씨는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었습니다. 

[사진=2005년 3월, 15세 김연아와 인터뷰 하는 모습.]

그런데 조용하고 차갑게만 느껴졌던 김연아가 2006년부터 확 달라졌습니다.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해였죠. 그랑프리 시리즈에 출전하기 앞서 국내에서 열린 아이스쇼에 나섰는데 알렉세이 야구딘, 예브게니 플루셴코, 이리나 슬러츠카야 등 당대 최고의 피겨스타들과 처음 무대에 같이 섰습니다. 김연아는 그때부터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노련한 선수들과 달리 김연아의 첫 공연은 다소 어설프게 보였지만 주니어 때와는 다른 생동감과 끼가 느껴졌습니다. 김연아는 공연 후 상기된 표정으로 “관중과 호흡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 연기에 좀 눈을 뜨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는 전 세계인들이 다 아는 ‘김연아 시대’의 개막입니다.

2010년 밴쿠버에서 목표했던 올림픽 금메달을 마침내 이루고, 소치 올림픽에서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감했습니다. 비록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올림픽 2연패를 이루지 못했지만 제 가슴 속에, 전 세계 모든 팬들의 가슴 속에 금메달리스트는 김연아일 겁니다. 그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P.S. 김연아와 첫 만남에서 나눈 짧은 얘기 한 토막. 나중에 결혼해서 딸을 낳으면 피겨를 시키겠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얌전하던 김연아가 “헉!” 외마디 소리를 냅니다. 그러곤 “절~대 절~대 안 시킬 거예요, 어우”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이 말도 현실이 될까요. 이건 조금 더 지켜봐야겠군요.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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