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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재벌 3-5 양형공식 부활? 깨진 적도 없다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지난 11일 있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의 선고를 놓고 뒷말이 많습니다. 특히 요 몇년 사이 깨진 것으로 알았던 재벌 총수들에 대한 ‘3-5(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정찰제 판결’이 부활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다시 살아났다’기 보다는 ‘아직 깨진 적도 없었다’는 평가가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아직 양형기준이 제대로 적용돼 확정판결을 받은 재벌 총수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3-5 정찰제’가 깨졌다는 평가를 최초로 받은 것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한 재판입니다. 1400억원대의 배임ㆍ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4년6월에 벌금 20억원, 항소심에서 징역 4년6월에 벌금 10억원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룹 계열사로부터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같이 재판을 받은 이 전 회장의 모친 이선애 전 상무 역시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 벌금 액수만 절반으로 줄어든 형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대법원이 2009년 제정한 양형기준을 적용한 첫 판결이어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월 상고했고, 대법원은 1년이 지나도록 판단을 미루고 있습니다. 건강 상의 사유로 구속집행이 정지된 이 전 회장은 대법원이 판단을 미루는 동안 병원에만 머물러 있어, 아직 처벌을 받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전 회장에 이어 ‘재벌 엄단 기조’를 이어갔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재판도 결국에는 ‘3-5 정찰제’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1심에서 징역 4년,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김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법원이 양형기준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양형기준을 적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형법 37조 후단 경합범’이라는 이유를 댔습니다. 김 회장은 2007년 ‘청계산 폭행사건’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는데요, 이번에 재판을 받은 범행은 2004년 무렵에 이뤄진 것이 뒤늦게 드러난 것입니다. 만약 2007년 재판을 받을 당시 2004년도의 범행도 함께 발각돼 재판을 받았다면 법원은 김 회장이 지은 범행들을 두루 참작해 형량을 정했겠죠. 그런데 그렇지 못하게 되면서 2007년 범행에 대해서만 형을 한번 선고했으니, 나중에 발각된 2004년의 범행에 대해서는 양형기준이 아닌 이미 기존에 선고받은 형을 참작해서 선고한다는 것이 ‘형법 37조 후단 경합범’의 논리입니다.

법적으로야 문제될 것이 없겠습니다만, 2004년과 2007년의 범행으로 선고받은 형기를 합산한 징역 4년6월이 적정한 것이었나 하는 의문은 남습니다. 양형기준은 300억원 이상의 배임ㆍ횡령 범죄에 대해 기본적으로 징역 5~8년을 선고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감경요소가 있더라도 징역 4~7년을 선고해야 합니다. (그래서 김 회장 사건의 1심 재판부는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한 이유에 대해 “양형기준을 참작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김 회장은 두 번 모두 집행이 유예됐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것이 됩니다. 이것이 그룹 계열사에 1500억원이 넘는 손해를 끼치고, 자신의 아들을 폭행 종업원들에게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보복폭행한 죄값으로 한국 법원이 내린 처벌입니다.

김 회장과 같은 재판부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은 LIG그룹의 구자원 회장도 사실상 양형기준을 무시한 선고를 받았습니다. 양형기준은 구 회장이 적용받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범행에 대해, 기본적으로 징역 6~10년을 선고하라 권고하고 있습니다. 구 회장은 이 기본영역에서 가중요소(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상당기간 반복적으로 범행) 1개와 감경요소(피해가 상당부분 회복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음) 1개가 상쇄돼, 기본영역을 그대로 적용받아야 합니다. 법원 역시 판결문을 통해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구 회장에게 내려진 선고 결과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법원은 구 회장이 LIG 건설의 허위 재무제표 작성ㆍ공시에는 관여하지 않은 점, 다른 범죄 전력이 없는 점,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은 점, 이 세가지 이유를 들어 양형기준이 권고한 최소 형량의 절반을 깎아버렸습니다. 거기에 더해 집행유예까지 선고해 사실상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룹의 경영권을 유지하겠다는 사적인 목적으로 선의의 일반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2000억원이 넘는 사기 범행을 친 대가입니다. 당장 인터넷에서 ‘사기’ ‘징역’을 넣고 잠깐만 뉴스를 검색해봐도 1~2억원대 사기 범행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보이는데 말입니다. LIG그룹 측은 사실상 피해자 전원과 합의했다고 주장하고, 법원도 이 점을 감형의 큰 요소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합의를 했다고 하는 피해자들이 실제로 얼마의 보상을 받았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LIG는 과연 피해금액의 몇 퍼센트나 보상했을까요? 지금도 피해자들 중 일부는 LIG그룹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고, 피해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가보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글이 간혹 올라오는데 말이죠.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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