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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죽은 나무엔 더 이상 바람도 불지 않는다
돈 때문에 종교 때문에 교육 때문에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들…新이산가족시대 슬픈 자화상
어느 시골에서 자란 A(52) 씨는 지방대를 나와 대기업에 당당히 입사했지만, 사업을 하겠다고 5년 만에 회사를 그만둔다. 1990년대 지방에서 벌이는 컴퓨터 조립 사업은 갈수록 물건값은 떨어지는데 기술발전 속도에 맞춰 새 부품을 계속 조달하다 보니 녹록지 않다. 실의에 빠진 A 씨는 어쩌다 한 대를 팔면 수익의 대부분을 술 마시는 데 지출했다. 자연히 차입경영이 진행되면서 형제들에게 손을 벌리게 됐고 형인 B(54) 씨가 부족한 자금을 지속적으로 대준다. 여러 해 동안 1억~2억원이 A 씨 사업장 적자를 메우는 데 들어갔다.

차입경영의 악순환를 견디지 못한 A 씨가 일반 직장에 다시 취직해 생활이 안정될 무렵, 이번에 형인 B 씨가 구조조정을 당한다. B 씨는 계약직 영업사원으로 일하지만 대학생 두 명을 부양하느라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A 씨 집에 얹혀살게 된다. B 씨는 이를 ‘A가 해야 할 당연한 보답’이라 여기고 TV 채널 주도권은 물론, 동생집 안방과 거실을 제집처럼 여기며 생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A 씨는 아무리 형이고 신세를 졌다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B 씨는 3년여 얹혀살면서, 동생 A 씨에게서 몇 십만원씩 여러 차례 돈을 꾸어 쓰고도 갚지 않았다. 결국 폭발한 A 씨는 싫은 소리를 했고 형은 “배은망덕한 놈”이라는 육두문자을 내뱉고는 의절 선언과 함께 그 집을 떠났다.


A 씨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 줄곧 어머니 C(80) 씨를 모셨다. 사업 실패로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면서 모자갈등이 불거졌고, C 씨는 집 근처 농지 1억원 상당을 아들의 빚보증 때문에 날린다. A 씨의 생활이 안정되면서 C 씨가 아들에게 “사업할 때 틀어막아 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자 A 씨는 “가족끼리 그런 소리 하느냐”며 역정을 내다가 갈등이 폭발했고, 최근 들어서는 한집에 살면서도 모자 간 말을 섞지 않는다. C 씨는 갈 곳도 마땅찮고 돈을 갚으려는 성의라도 확인하려고 아들집을 떠나지 않은 채 입을 닫고 산다. 사실상 생이별이다.

이산(離散)은 휴전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의, 태도 문제 때문에 한집에 살면서 말을 섞지 않는 이들 모자도, 돈ㆍ의리ㆍ예의 문제로 의절한 형제도 이산가족이다.

가정은 삶의 자양분이 되어야 하지만 이들에게 가정은 오히려 동력을 소모시키는 깊은 함정이다. AㆍBㆍC 씨는 지금 가족의 생이별이 삶의 한 쪽을 잃어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처절히 느끼면서도, 복원 방법을 찾지 못한다.

차라리 휴전선이 갈라놓았다면 철조망을 원망하고, 어릴 적 고아원에 맡긴 아이가 외국에 입양됐다면 가족관계 말소라는 핑계라도 대겠지만, 언행으로 인한 상처, 자존심, 도의 문제로 생이별한 ‘신(新)이산가족’들은 핑계와 비난의 화살을 의절 가족에게 쏘고 있으니 대책이 아득하다.

놀이동산에서 부모의 손을 놓쳐 생이별을 한 아이, 부모 모시기를 꺼리는 자식 때문에 달동네에서 라면으로 연명하는 독거노인, 부모의 불륜 때문에 방황하는 아이들, 종교 때문에, 보증 문제로 꼴도 보기 싫어하는 생이별 역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남북 이산가족조차 철조망을 넘어 상봉을 재개하려는 마당인데 말이다.

‘신(新)이산가족’의 뒤틀어진 인생 여로를 스스로 바로잡기가 버거워 보이지만, 그냥 있으면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상봉의 실타래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트라우마 가족치료 연구소 최광현 소장(한세대 교수)은 “서로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가족은 두 얼굴을 가진 존재”라면서 “어린 시절 상처를 보듬고, 순수했던 지난 추억을 돌아보는 일도 의미가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비슷한 처지를 가진 여러 이웃이 가족갈등을 털어놓다 보면,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고 치유 및 해법을 모색할 길도 열 수 있다”고 충고한다.

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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