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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이 착해졌다
남편시신 7년간 보관 아내에
“엽기적이다” 대신 “안타깝다”

올림픽 모태범선수 노메달에
“미안해 하지말아라” 격려 글


인터넷이 착해지고 있다. 악마의 얼굴을 한 악플은 여전히 횡행하지만, 이를 상쇄할 만큼의 ‘천사의 댓글’도 최근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조용하지만, 일각에서의 착한 댓글의 혁명이 계속 진행될지 주목된다. 특히 최근에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공감(共感) 능력을 발휘하고, 불합리한 세태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많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죽은 남편의 시신을 7년간 집에 보관해 온 40대 여성이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가족들은 평소와 다름 없이 시신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하며 조용히 지내왔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처음엔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내용이 알려지면서 “엽기적이다” 대신 “안타깝다”로 기울었다. 행동이 엽기적이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를 숙연함이 배경에 깔렸던 것으로 풀이된다. 작은 사안에도 심장에 비수를 꽂는 악플이 쏟아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례적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관련 기사 댓글 중엔 “죽었다는 사실을 머리론 아는데 가슴으론 인정하지 않은 것 같다”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등의 댓글이 달리면서 큰 호응을 받았다.

올림픽 관전 풍경 역시 예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메달에 목매지 말라” “국민에게 미안해 하지 말라”는 선수 응원글이 봇물을 이루면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일등주의’에 반기를 들고 있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13일 새벽 모태범 선수의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 경기가 끝난 직후,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수백건의 추천을 받았다. 글의 내용은 “왜 끝나고 인터뷰에서 죄송하다고 하느냐. 정작 본인이 제일 힘들 텐데…”였다.

이 글에 달린 댓글 중에는 “ ‘기대에 미치지 못해 죄송하다’는 소리는 평소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지원을 하는 상황이라야 들을 만한 것.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금빛 물결이라는 등 거슬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등의 메달 색깔에만 집착하는 현실에 대한 자성론도 많이 누리꾼들의 지지를 받았다. 트위터에서도 “모태범 1000m 12위 상관없다. 밴쿠버에서 금메달 따고 1년 지났더니 그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했던 우리였는데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금메달 타령 지겹다. 그거 안 따도 세계에서 그 종목 제일 잘하는 사람 20인에 드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라는 내용이 수차례 리트윗됐다.

남성잡지 GQ의 이충걸(@leechoongkeol) 편집장은 13일 새벽 트위터에 “가쁜 호흡 속에서 쏟을 듯 우수를 드러내는 선수에게 이런 질문은 하는 게 아니다. ‘여섯 번 나오셨는데 결국 메달을 따지 못했어요. 후회가 많을 것 같은데’ ”라고 글을 올렸다. 스피드 스케이팅 이규혁 선수에 대한 한 언론의 인터뷰 질문을 꼬집은 것이다.

물론 “계란 맞을 준비해라” 같은 악플도 적지 않지만, 금메달에 목맸던 예전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정희준 동아대 생활체육학과 교수는 “선수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에 대한 자평을 해야 하는 데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건 외국에선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황당한 장면”이라며 “경기보다 승부에 집착하는 언론과 금메달리스트에만 보상을 집중하고 있는 협회 등이 선수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노력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은 일등이 모든 걸 다 가져가는 ‘일등주의’에서 우리가 벗어나고 있다는 반가운 징후다. 나쁜 관행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며 “일반 국민들이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상황이고 오히려 언론 등이 이 변화를 잘 따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악플이 홍수를 이루는 상황에서 일각의 ‘착한 댓글’이 인터넷 정화수로 작용할지 주목되는 일이다.

이지웅 기자/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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