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명의들 ⑪>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이동현 교수
[헤럴드경제=김태열 기자]“방광적출술을 받은 후 소변주머니를 옆구리에 차고 외출을 하려니 엄두가 나질 않았아요.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혹시 냄새가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스트레가 심해져 3개월 동안 집 밖에도 안 나갔죠.”
대장암이나 방광암 수술 후 소변주머니와 장루(대변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질병의 완치를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나 혹독하다. 하지만 방광암의 경우 방광을 적출하더라도 자신의 소장을 일부 잘라내 인공방광을 만들어 줄 경우 삶의 질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인공방광을 몸에 단 환자들은 ‘장님이 눈을 번쩍 뜨는,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이동현 교수(49)는 ‘요술주머니’인 ‘인공방광’을 만들어 주는 국내 몇 안 되는 ‘미다스의 손’이다.
방광암은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는 암이다. “방광암이 발병하는 이유는 모든 암이 그렇듯이 정확한 원인은 모릅니다. 하지만 방광암을 잘 발생시키는 위험인자는 노화, 흡연, 각종 화학물질에의 노출, 감염 및 방광결석 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염색약이나 석유화학제품, 가죽제품을 다루는 직업군은 방광암에 취약한 직업군입니다. 주로 70세 전후로 많이 발병하는데 특징적인 점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약 4배 정도 더 잘 걸린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12월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1년에 우리나라 국민에게 발병한 총 21만8017건의 암 중 방광암은 총 3549건으로 남자가 2847건, 여자가 702건 이었다. 남성암 중에서는 일곱 번째다. 연령이 높을수록 발생율이 높았다.
“소변에서 피가 섞여 나오는 ‘혈뇨’가 방광암의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혈뇨 시 통증은 없는데 소변줄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피가 나오고 핏덩어리를 동반한다면 즉시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합니다.”
방광암은 비뇨기에서 생기는 가장 흔한 암 중에 하나로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방광 내 점막에만 국한되어 생기는 초기 표재성 방광암, 점막을 뚫고 근육까지 진행된 근침윤성 방광암, 전신으로 퍼진 전이성 방광암 등이다. 점막에 생긴 암은 방광 내시경으로 혹만 제거하면 되고, 암세포가 전신으로 전이된 경우에는 전신 항암요법을 고려하게 된다.
“침윤성 암과 표재성 암은 생긴 것은 비슷하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릅니다. 전체 방광암의 70%를 차지하는 표재성 암은 아무리 커도 림프절이나 조직 안으로 침습을 안합니다. 사마귀 같은 혹덩어리라 잘라내면 끝나죠. 재발이 잘되지만 그때마다 내시경으로 잘라내면 돼요. 사망할 가능성도 거의 없어요. 침윤성암은 크기에 관계없는 무서운 암덩어리입니다. 마치 스펀지처럼 림프절이나 주위 조직으로 스며들어 가죠. 주위 조직으로 전이도 잘되는데 이 경우 5년 생존율은 약 50% 정도입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표재성 암이 자주 재발하면서 침윤성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최근 자주 보고되고 있어요. 예전에는 10% 정도였는데 지금은 40%까지 돌변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침윤성 암의 경우 종양의 완전한 제거를 위해 방광을 적출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소변주머니를 차야 해 ‘삶의 질’은 ‘급전직하’한다. “소장을 약 60㎝ 정도 잘라서 가운데를 쭉 갈라서 펼친후 띠모양으로 만들어요. 그런 다음 양쪽을 잡고 얼기설기 붙이고 꿰메 공모양을 만들죠. 이렇게 방광 모양으로 만든 다음 소변이 나오는 요도로 이어줍니다.”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이태리 장인의 마음으로 ‘한땀 한땀’ 꿰매 공모양으로 만드는 시간은 대략 8시간 정도. 소변이 새면 안 되므로 고난도의 테크닉이 수반되는 정밀한 작업이다. 이 교수의 숙련된 손놀림은 이 작업을 4시간으로 단축시켰다. 국내에서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4시간으로 단축을 하니까 수술 도중 수혈이 필요 없는 무수혈수술이 가능해져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자나 특히 고령환자에게도 수술이 가능해졌죠.”
스튜더라는 외국의사가 고안한 이 인공방광술을 국내에서 시행하는 의사는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이 교수는 이 수술을 1996년에 처음 시도해 지금까지 15년간 154건을 한 번의 의료사고도 없이 성공했다.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에서는 지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30건에 불과했던 인공방광수술이 2011년 21, 2012년 33, 2013년 40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40건의 인공방광수술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요술주머니 같은 이 인공방광도 자신의 소장을 잘라서 쓸 수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암으로 장을 잘라냈거나 소장을 도저히 잘라 쓸 수가 없는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만들 수가 없다. 다른 장기나 인공적인 물질로는 지금까지의 의학기술로는 다 실패했다. 인공방광을 새로 만들 경우 적응하는 데는 약 3개월 정도 걸린다. “갓난애가 소변을 가리는 데 1년 반 정도가 걸립니다. 새로운 방광이 생겼으니 적응기간이 당연히 필요하죠. 3개월 정도만 지나면 금방 적응이 돼죠. 하지만 인공방광은 기존의 방광을 적출하고 새로 만든 방광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자연스러울수는 없어요. 기존 방광적출시 근육이 손상됐기 때문에 소변을 볼 때는 배에 힘을 주고 방광 쪽이 있는 아랫배를 짜내듯이 눌러줘야 합니다. 하지만 잔뇨감도 거의 없고 발기기능도 살려 줘 수술 후 부부관계에도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여성의 경우 침윤성 암으로 진단받으면 자궁, 난소, 질, 방광까지 다 적출해야 하기 때문에 성 생활은 사실상 할 수가 없는데, 젊은 환자의 경우 되도록 완치도 중요하지만 삶의 질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성생활이 가능하도록 질을 보존하고 인공방광을 만들어 줍니다.”
이 교수는 환자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새 삶을 얻었다고 찾아올 때 비뇨기과 의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소변주머니나 장루(대변주머니)를 찬 경험이 있는 사람은 생활의 불편, 성 생활은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상실되는 충격이 옵니다. 새 삶을 얻었다고 기뻐하는 환자들 보면 의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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